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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12(끝)]# 자연,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 세계의 아이들 지면기사
툰드라·북유럽인·잉카원주민 등 바람소리 맞으며 스스로 견디게… 혹한 길들이기히말라야에선 백일 안된 아기 마당서 오일 마사지·가족들 외출후 '정화의식' 치러자립심과 이기심을 혼동 독불장군 아쉬움·나보다 우리가 우선인 사회를 꿈꾸며…*보다 건강한 아이를 위한 육아툰드라 지역에 사는 유목민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그 혹한 속에서도 대지의 신께 아기의 영혼을 의탁한다는 의식을 치르고 하루에 한번 아기를 강보에 싸서 밖으로 나가 대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어떤 어려움(기후 조건)에 부딪히더라도 두려움 없이 헤쳐나가라는 의미란다. 북유럽인들 역시 한겨울에 아기가 태어나도 요람에 눕혀 늦은 밤까지 정원 나무 밑에 아기를 두는 것이 일상이란다. 아기도 자연의 일부여서 자연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 거기에 맞게 단련하는 거라고, 자연에서 지혜를 얻고 건강을 지키며 그 아기가 자라 걸음마를 배울 땐 수없이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격려하고 기다리며 어른이 도와주는 일은 없단다.우리 조상의 시원이라는 바이칼이나 북몽골에서 순록을 키우며 사는 차탕족도 그랬고, 안데스 골짜기에서 알파카를 키우며 사는 잉카원주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깥기온이 영하 40도로 뚝 떨어져도 아기가 태어나면 산모 곁에만 두지 않고 매일 일정시간 밖에서 햇빛을 받게 하고 바람소리, 풀잎 흔들리는 소리 같은 자연과 교감을 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란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만난 출생 20일 된 아기는 털옷을 겹겹이 입고 있었다.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데 털옷이라니 아무리 신생아라도 너무 덥지 않을까 싶었는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프리카의 뜨거운 기후에 적응시키지 않으면 수많은 풍토병과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가 없게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단다. 그야말로 이열치열인 셈이다.히말라야에선 백일이 채 안된 아기를 햇살 좋은 낮 마당에 발가벗겨 놓고 오일마사지를 해주는 건 기본이다. 저녁이 되면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그 앞에서 벗긴 아기를 따듯이 데운 겨자오일로 마사지를 해준다. 오일을 눈과 귀에도 몇 방울 넣어주는데 아기는 행복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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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11]# 원숭이가 먹으니 # 우리도 먹어요 -잠비아 편 지면기사
빅토리아폭포가 있는 워터프런트 마을엔 국립공원 출장요원이 아이들 상대로 '야생동물 안전교육'길 위에 노인과 손자 앞에 '남몰래 적선' 직구 날리는 할머니 "이거 자네거지?"… 허기라도 달래길*팜트리잠베지 강으로 이어지는 빅토리아폭포가 있는 마을 워터프런트. 저녁 무렵 숙소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자 숲 입구에 아이들이 떼로 모여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국립공원 쪽에서 나온 코끼리 떼가 늘 비슷한 시간에 마을 앞을 지나 빅토리아 폭포 방향으로 일제히 움직인다며 조금 기다리면 코끼리 떼를 볼 수 있을 거란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들과 흙장난을 하며 곧 나타날 코끼리 떼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20마리 쯤 되는 코끼리들이 등장하더니 마을 근처 아카시아 잎과 나뭇가지를 모조리 훑으며 작은 숲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머무는 캠프촌이나 동물원 경계지역도 예외 없이 전기울타리가 쳐져있었는데 모두 야생동물들로부터 사람이나 집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늘 보는 코끼리일 텐데 아이들은 코끼리 떼가 나타나자 즐거워하면서도 줄행랑치기에 바쁘다. 워낙 힘이 좋고 덩치가 큰 짐승이니 가까이 가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기야 어느 보고서를 보면 아프리카에선 동물에게 밟히거나 채여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으니.다음 날 오후 마을에 나가보니 3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팜트리 그늘 아래에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국립공원에서 출장 나온 안전요원이란다. 워터프런트 마을이 동물들이 다니는 통로여서 평소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그런 교육은 주기적으로 필요하다며 아이들을 모아놓고 안전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교육이 끝나길 기다려 그와 몇 가지 일문일답을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그의 이름은 '쿠완다 반다'로 깡마르고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신뢰가 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야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마을이어서 이런 교육이 평소 얼마나 필요한지 잘 설명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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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10]# 오래된 # 미래를 가다- 라다크 편 지면기사
바위절벽에 붙은 마을·청보리 물결·공차는 아이들 '설레는 이상향'별보다 더 예쁜 눈을 가진 천막집 계집아이들 아른거려 밤새 뒤척여검불처럼 가벼운 막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처럼 백팩을 푼다…*라다크 아이들 바위 절벽에 간신히 몸을 붙들고 있는 마을엔 청보리가 물결을 이루고 아이들이 좁다란 골목에서 공을 찰 때마다 뽀얀 먼지가 폴폴 날렸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곰빠(사원)엔 룽다(풍마)가 펄럭이고, 붉은 승복을 입은 뺨이 발갛게 튼 어린 스님들은 동네 아이들의 공놀이를 부러운 듯 구경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공이 아득한 벼랑 아래로 떨어질 판인데 정작 축구를 하는 아이들은 아무 걱정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아이들 표정이 어쩜 저토록 밝을까? 대체 저곳은 어딜까? 지상에 저런 피안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아니면 가상세계? 그 아름다운 광고 한 편은 내게 사건(?)이었다. 단지 모기업의 짧은 광고 하나로 마음이 술렁이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그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이상향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작의 신호였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라다크 땅 라마유르, 나는 그 마을을 수배하기 시작했고 2년 후 배낭을 꾸려 그곳을 찾아 떠났다.라마유르를 거쳐 찾아간 마을 알치(Alchi)는 라다크(Ladakh) 중심도시 레(Leh. 3천505m)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인더스강을 끼고 있는 고원의 아름다운 마을이다. 특히 알치 곰빠(사원. Alchi Gompa)의 벽화는 라다크 지역에서도 불화(카슈미르 양식의 벽화)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 7월 말은 1년에 50여일 열린다는 육로가 열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사방이 모래와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온통 황량하지만 강가에 미루나무가 서있고 보리밭이 물결치는, 주변에서 초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사원을 둘러싼 마을 어귀에는 당나귀가 보리타작을 하고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 주변엔 노란 살구가 유혹의 손길을 뻗었다. 도착 다음 날 여행자들은 가까운 계곡으로 트레킹을 떠나고 나는 인더스 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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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9]# 사랑이 아니면 # 무엇으로- 탄자니아 편 지면기사
내곁으로 다가온 예닐곱살 계집아이 "뭘 달라는 것이겠지…"털린 줄 알았던 바지주머니에서 나온 붉디붉은 부겐빌레아 꽃잎 "이런~"인도양 '노예의 섬' 잔지바르에서 만난 다리가 불편한 소년비루한 구걸이 아닌 당당한 흥정 "예스, 아임 해피" 긴 여운*붉은 꽃잎으로 남은 마사이 아이구슬목걸이에 나풀거리는 꽃무늬 블라우스를 보면 계집아이가 분명한데, 마을 남자들이 막대기를 들고 겅중겅중 하늘로 뛰어오르며 마사이 춤을 추고 돌아간 후였다. 안개처럼 허공을 채운 사바나의 흙먼지 속에서 꿈인 듯 생시인 듯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진원을 찾아가니 예닐곱 살쯤 된 계집아이다. 그 노래, 마사이 동요였는지 연가였는지 모르지만 들릴 듯 말 듯 내 귀를 파고들던 가늘고 여린 휘파람 소리. 다음 날, 도무지 낯선 여행자들의 호기심 따윈 상관없어 보이는 아이가 슬며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뒤로 감춘 오른손에 신경이 쓰였다. '보나마나 뭘 달라는 것이겠지' 나는 특별히 이 아이에게 마음을 쓰지 못한 채 몇몇 여행자들 속으로 묻혀갔고 그런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이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오자 뭔가를 눈치챘는지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따라왔다. 대기해 있던 차에 오르는 순간 다급해진 아이가 내 바지주머니에 뭔가 슬쩍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짓이야!"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걸 안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쏘아보았고 아이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나를 피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바지를 벗는데 흰 침대시트 위로 뭔가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이런! 붉디붉은 부겐빌레아 꽃잎이었다. 왈칵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날 밤 나는 아이의 진심을 몰라준 내가 너무 미워 이불 속에서 조금 길게 울었다.*당신 뜻대로탄자니아, 다르 에스 살렘에서 대형페리로 3시간쯤 달려 인도양 서쪽에 위치한 노예의 섬 잔지바르에 도착한 날은 하늘이 거짓말처럼 파랬다. 배에서 내리자 마중이라도 나온 듯 꽃을 든 무슬림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많은 사람 속에서 소년과 눈이 마주친 건 우연이었을까. 이때다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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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8]# 나는 # 조종사가 될 거야 - 네팔 히말라야 편 지면기사
산골 담푸스 아랫마을, 호기심 가득하던 아이는 알코올중독 아버지와 지독한 가난에 지쳐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인 '최고봉 히말라야' 그들에겐 높이만큼 힘겹고 척박한 삶의 무대6년만에 '사진첩' 들고 다시 찾은 그곳엔 버드나무같던 처녀가 뚱보아줌마가 되어 있었다어떤 이에겐 생애 첫 사진이라는 것, 자신의 과거를 볼 수있는 영혼의 거울로 믿는다는 것…*먼질 비슈어커르마"먼훗날 나는 조종사가 될 거야.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거야."EBS <세계의 아이들> '눈의 아이 하늘을 꿈꾸다'를 통해 본 히말라야 언저리에 사는 먼질 비슈어커르마(14)의 일상을 시청한 후, 네팔로 날아가 먼질을 만나기 전까지는 조그만 개구쟁이를 상상했는데 이젠 제법 청년의 티를 내며 거짓말처럼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표정이 어둡고 다소 반항적으로 보이는 먼질(나는 먼질이 젊은 날의 제임스 딘을 닮았다고 생각했다)은 히말라야 산골마을에 살며 파일럿을 꿈꾸는 소년이다.이른 아침, 안나푸르나 산군이 눈앞에 펼쳐지는 담푸스 아랫마을로 먼질을 찾아 나섰다. '힐레'가는 날 전해줄 게 있어 '페디'에서 먼질의 엄마와 함께 본 후 나흘만이었다. 아이답지 않게 온통 우수로 가득한 표정의 먼질을 만났을 때 문제를 직감했지만 나는 말을 아꼈다. 먼질은 비행기를 보고 자신도 언젠가는 조종사가 되어 하늘을 날 거라고 나무로 깎은 모형비행기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계곡을 내달리던 TV속 호기심 가득한 그 아이가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말이 없었고 즉답을 피했다. 먼질은 도시로 간 누이를 제외하고 세 명의 어린 동생과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살았다. 길에서 만나 오두막으로 안내하던 먼질의 아버진 취해있었고, 가족들은 집에 없었다. 집은 비가 새는 두어평도 안 되는 곳에 침대 하나가 전부였는데 아무리 그럴 듯한 상상을 해도 저 좁고 누추한 공간이 다섯 가족의 보금자리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화를 원했지만 아침부터 술에 절어 있어 그와의 대화는 불가능했다.먼질의 아버지와 헤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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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7]# 세계에서 # 가장 독특한 # 화장술- 미얀마 편 지면기사
건조기후서 자란 나무 갈아 제조 자외선 차단·잡티 예방… 아이·젊은 남자도 애용인도차이나 지역서도 유일·지방 여행 가는 곳마다 "뺨·코·이마에 한번 발라볼래?"2500개 이상 파고다가 있는 '올드 바간' 경전의 가르침 '진정한 善은 용서 구하는 일'*타나카(Thanakha)미얀마 남자 누구나 입는 일상복이 '론지(통치마)'라면,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여자들 얼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천연화장품 타나카(Thanakha)다. 색상은 흰색에 가까운 노란색이 주를 이룬다. 미얀마를 여행하다보면 십중팔구는 타나카를 바를 만큼 대중적인 화장법이다. 나무이름에서 따온 타나카는 주로 미얀마 중북부의 건조한 기후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지고, 북쪽 쉐보(Shwebo)지역의 것을 최고로 꼽으며 잎은 식용으로도 쓰인다.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 주로 애용하며 화장품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의약품으로써의 효과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이는 자외선을 차단해주고 피부에 트러블을 없애주며 잡티나 얼룩 같은 것을 막아주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알수 없으나 인도차이나지역에서도 유일하게 미얀마에서만 볼 수 있는 화장법이어서 이를 처음 대하는 여행자라면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재료는 기념품점이나 일반가게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만드는 방법도 비교적 간단하다. 가운데가 약간 들어간 둥근 석판에 물 서너 방울 떨어트린 후 토막을 낸 타나카 나무를 벼루에 물을 붓고 먹으로 갈듯 걸쭉하게 갈아내면 된다. 이때 좋은 글씨를 위해 먹의 농도를 조절하듯 타나카도 같은 원리다. 다소 번거롭기는 해도 나무를 곱게 갈아 젤처럼 걸쭉해진 타나카를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은 2~3분이면 족하다. 타나카는 천연화장품인 만큼 보관이 쉽지 않아 필요할 때마다 만들어 써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부분 즉석에서 갈아 쓰지만 바쁜 도시 여자들은 직접 만들지 않고 여러 타입(액체, 고체, 파우더)으로 개발된 상품을 선호하는데 그중 젤 타입이 가장 인기가 좋다.지방을 여행하다보면 이를 만드는 석판과 재료가 없는 집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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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6]# 할례를 # 아시나요? -아프리카 편 지면기사
의식 과정 고통 상상초월… 부작용으로 생명 잃기도지구상 어린여성 1억5천명 이상 가혹한 시련의 상처9살때 할례 치른 13살 소녀의 닥쳐올 미래에 먹먹함어머니, 아내, 누이, 딸을 보라 무슨 죄가 있는가…*우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 말라위 칸데비치 마을 겁에 질려 죽을힘으로 견뎌냈을 13살 곤도웨이의 그 맑고 깊은 우물 주술사의 무딘 사금파리로 집도 되었을 뜯다만 수제비반죽처럼 씹다만 껌처럼 일그러져 있던 어린 소녀의 측은한 할례 소녀의 우물에서 피어나던 시든 과일향기 처음 본 여행자에게 치마를 걷고 속살을 보이며 우렐레 우레헤~ 우렐레 우레헤~ 춤추고 노래 부르던 철없는 곤도웨이 그날, 바람 부는 호숫가에서 내가 본 잊히지 않는 작은 우물 하나 송두리째 일그러진 한 소녀의 그것 *대체 누가 저 여린 꽃잎에게 몹쓸 짓을많은 사람들이 무지한 행위 여성할례를 무슬림 법으로 알고 있지만, 이슬람 경전인 코란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근래에는 할례가 종교나 전통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쾌락을 용납할 수 없다는 남자(수컷)들의 성적 환타지에 근거한 권력의 악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여자의 성기는 원래 불결하고 음탕하여 뿌리째 도려내 그 죄를 막아야 한다고 믿어왔다는 것, 이것은 우리 모두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슬픈 일이다. 순결한 처녀를 상징하기 위해 초경 전 주술사에 의해 여자에게 가장 민감한 신체의 일부(음경)을 도려내고 봉한 다음 성년이 되면 오직 남편의 손에 의해서만이 그것을 다시 풀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할례의식, 그 과정에서 어린 여아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가혹하며 더러는 수술 부작용으로 적지 않은 생명이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할례를 당하는 본인은 물론 그를 낳고 기른 어머니조차 할례거부에 대한 의사 결정권이 없는 것이 오늘날 아프리카 여자들의 현실이다. 이집트와 케냐 등에서 할례를 금지하는 법률이 공표되었다고는 하지만 늘 법보다 먼저인 어둠 저편에서 행해지는 무지막지한 악습, 아직도 지구상에는 어린 여성 인구 1억5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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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5]# 아이들은 # 죄가 없다 -인도편 지면기사
기차역 샌드위치 팔던 청년 "상한 빵이 어때서?"… 군침 흘리는 아이들에겐 먹고 탈 나도 사치하우라역 10살 소년에 배낭 맡기고 "아차!"… 안도감·죄책감 뒤로 "밀, 의심한거 정말 미안해"*하우라 꽃시장그늘이 있으면 빛이 있겠지. 세상의 금잔화를 다 모아놓은 듯한 하우라 꽃시장에선 행복만을 떠올렸다. 지상에 인도인보다 꽃을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인도에선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듯 사람이 꽃이고 꽃이 사람이다. 신을 위해서라면 가난을 팔아서라도 기어이 꽃을 산다. 인도에서는 꽃이 신(神)이다.*인도의 가난샌드위치 한 조각을 들고 인도의 어느 오후를 추억하고 있다. 기온은 40℃에 육박했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우기였으며 무갈사라이 역에서였다. 하우라역을 출발한 기차가 인도 최북단 역 쉼라까지는 20시간 이상 남았고 나는 배가 고팠다. 안내방송도 없이 기차는 섰고, 사람들은 우루루 차 밖으로 나가 먹을거리를 사느라 분주했다. 이때다 싶어 나도 기차에서 내렸는데 눈에 들어온 건 청년이 파는 샌드위치였다.나는 샌드위치 두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깥바람을 조금 쐬고 자리로 돌아와 포장을 열자 확 달려드는 곰팡이 냄새. 알록달록해야할 속이 짙은 녹색을 띠고 있었다. 후다닥 기차에서 내려 빵장수를 찾아갔다. 상한 빵을 팔면 어쩌냐고 환불을 요구했지만 청년은 딴청을 피며 '이 빵이 어때서?' 하는 표정으로 시간을 끌었다. 주변에는 금세 아이들이 몰려와 까만 눈망울을 굴렸다.기차는 출발신호를 알리는데 빵장수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해 억울했지만 어쩌랴, 문제의 샌드위치를 빵장수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던지려던 바로 그때, 한 소년이 풋볼선수가 공중으로 날아 공을 낚아채듯 몸을 날려 내 손에 든 샌드위치를 빼앗아 바람처럼 달아났다.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달려가 빼앗을 수도 없는 아주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생긴 그들의 가난,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기차가 곧 떠나리라는 걸 빵장수가 알고 있듯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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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4]# 춤추는 # 사하라의 노마드들 -모로코 편 지면기사
모래산 오르다 허리 다쳐 베두인 가족 천막에 불시착 '나를 위한 즉석 파티'사막의 바람을 몸에 두르고 팔짝팔짝… 불행·슬픔 따위 단어가 있을까?페스의 무두공장 열다섯 안팎 소년들 사진 찍어 달라며 '헤이, 헤이!'아이들에 새겨진 주홍글씨·감독의 야비한 눈빛… 구토 유발 '잔인한 현실'*무두공장의 아이들그날은 사막투어를 마친 메르조가에서 지프로 9시간을 달려 페스에 도착했고, 신시가지보다는 성 안쪽 메디나 구시가지에 숙소를 정한 건 중세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어서였다. 며칠 씻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 짐을 부려 놓고 나는 욕실로 들어가 한바탕 물과 씨름을 했다. 사막에서 따라온 황색모래와 먼지들이 물에 씻겨 욕조바닥에 쌓였다가 하수구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무거운 머리와 고단했던 몸은 여행 첫날처럼 맑아져 새로운 힘이 서서히 몸으로 깃드는 것을 느꼈다. 이 얼마나 고마운 회복인가. 다음 날 나는 그렇게 보고 싶었던 무두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열다섯 안팎 되어 보이는 너댓 명의 아이들이 '헤이, 헤이!'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며 부르기에 기다리면 차례가 올 거라고 말해 주었다. 바로 앞에서 허리가 굽은 노인이 파란 통 속의 가죽을 문지르고 꺼내는 작업을 지켜보느라 아이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힘든 무두질을 하기엔 터무니없이 늙은 노파였다. 딱 한 번 노인과 눈이 마주쳐서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노인은 무표정하게 통속으로 얼굴을 처박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의 굽은 등이 내 가슴을 무너지게 만들었고 튼튼한 내 하체를 후들거리게 했다. 노인을 보고 돌아서자 그때서야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서 내가 경험한 악취 중 가장 지독한 악취가 무두공장의 악취라는 걸 나는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구덩이(피트 pit)에 색깔별로 가죽을 옮겨 담고 일일이 손으로 분리하고 발로 밟는다. 한 번 무두공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평생 나갈 수 없다던 야비한 눈빛을 가진 감독에게 은근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눈을 부릅뜬 현실이 아니던가. 인도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시체를 태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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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3]# 5백원으로 살 수 있는 # 여행자의 행복 - 베트남 편 지면기사
있지도 않은 모자 팔겠다는 고집뒤에 12살 가장 '하잉'의 간절한 삶의 무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베트남 도시 벗어나면 소수민족 '그들만의 의상' 입어… 흐몽족·자오족·후라족 모인 장마당 전통의상 파티장 온듯뺨이 노을처럼 발그레한 계집아이들은 남루한 옷차림에 더러는 맨발이다. 직접 산으로 들로 헤매며 꺾어 만든 꽃다발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밥도 되고 학교도 되고 연필도 된다고. 물론 대부분의 여행자에겐 귀찮은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기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안다.*꽃 사세요!"꽃 사세요!" 이처럼 정다운 말이 또 있을까. 아침나절, 짙은 안개 사이로 계단식 논이 그림처럼 펼쳐진 복사꽃 만발한 산길을 홀로 걷고 싶었지만 잊을 만하면 고갯마루에서 몽족 아이들이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여행자들을 쫓아다니며 시들기 전에 꽃을 팔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꽃을 사들고 숙소에 도착할 때쯤이면 반쯤 시들어 병에 꽂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상태가 되지만 다음날 산책에서 돌아올 때면 늘 비슷한 꽃이 내 손에 들려져 있곤 했다. 나는 아이가 시든 꽃을 버리고 하루 장사를 망쳐 실망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걸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니라 매일 아침 내가 내 자신에게 꽃을 바치는 작은 의식이 축복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많은 나라 오지 아이들로부터 나는 꽃을 선물로 받아왔다. 거기엔 무언의 조건이 붙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럴 때마다 대부분 사탕이나 볼펜 하나로도 흡족해했다. 사파 아이들의 그 꽃값은 우리 돈 5백원 정도, 흥정을 잘하면 단돈 백원으로도 살 수 있고 반대로 천원을 줄 수도 있지만 나는 저들이 정한 5백원이라는 금액이 적정액이라 믿는다. 사파에서의 날들뿐 아니라 아침마다 단돈 5백원이면 살 수 있는 행복이 세상 도처에 있다는 것을 여행자가 아니었으면 나는 몰랐을 거다. 여행이 행복한 이유다.*해줄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구나사파에서 며칠을 보내고 박하로 이동했다. 꽃몽족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박하는 제법 큰 마을이지만 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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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2]#신은 #빈 콜라병을 #누구에게 주기를 원하실까-남미 페루편 지면기사
쿠스코 근교 피삭 가는 길에 양치기 소년들과 유쾌한 잉카식 공기놀이 '추억'이색적 난장 풍경에 흥분해 엎어진 나를 보고 킬킬대는 아이들… 장마당은 금세 웃음바다로마추픽추 구불구불 산길 관광버스가 돌때마다 각 나라말로 '굿바이!' 외치는 소리, 머지않아 사라지겠지…우리는 처리 곤란한 쓰레기로 취급하는 빈병인데 그들은 오로지 그 병 하나를 얻기 위해 추운 산길을 슬리퍼 차림으로 서너 시간을 걸어 그곳까지 온다고. 그럼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나중에 물어보니 빈병 하나면 사탕 5개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굿바이 소년에게 준 빈 콜라병 마추픽추의 거점 마을 아구아깔리엔떼에 숙박을 정하고 3일 동안 마추픽추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4일은 잉카트레일을 추위와 고소를 적응하며 발이 아프도록 걸었다. 잠은 게스트하우스와 텐트를 번갈아 가며 해결했지만 식사는 요리사가 동행해 주었다. 하루는 저 멀리 야마가 풀을 뜯고 있는 민가가 없는 외딴 길을 걷고 있는데 고개 마루에서 페루(잉카)의 전통의상 숄과 폰쵸(판초)를 입고 전통언어인 케추아어를 쓰는 소년 몇이 우리 일행을 따라오며 환영인사로 말을 걸어왔다. 그때 각기 다른 나라 여행자 5명이 팀을 이루어 걷고 있었는데 소년은 나를 보더니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때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으면 그들이 그 전설의 굿바이 소년이라는 걸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마추픽추로 오르내리는 험로에서 그들을 보지 못해 섭섭했는데 잉카트레일에서 그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생각해 보면 그 또한 행운이다.소년들은 여행자들이 음료수를 마시고 난 후 버리는 빈병을 얻기 위해 그곳을 지킨단다. 물론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어서 나는 이미 몇 소년 중 누구에게 빈 병을 줄 것인지를 마음으로 정한 후였다. 나는 콜라를 반 쯤 마시고 가장 어린 꼬마에게 병을 건넸다. 녀석은 '그라시아스(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새처럼 날아 순식간에 저만치 사라져갔다. 다음 날은 다른 아이들이 산마루에 나타났다. 우리는 처리 곤란한 쓰레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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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창간 72주년 특별기획]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 프롤로그 지면기사
아이들 위한 여행 아직도 진행형나눔으로 보답받는 미소의 '가치'밥이 곧 경전, 삶 그 자체 깨달아배낭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90년대 초, 나 역시 경험자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인도로 갔다. 최악의 그림을 예상했지만 다음 날 새벽, 오물이 널린 올드 델리 골목에서 어른과 아이가 섞여 잠든 모습을 보며 지상에 지옥이 있음을 확인했달까. 겨우 인도에 도착한 지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집을 나서기 전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은 까맣게 잊고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길에서 노인이 끓여주는 짜이(밀크 티)를 마시며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얼마 후 이성을 되찾았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외치는 '아임 헝그리'는 피할 수가 없었다. 사흘을 올드 델리에서 보내고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순례니 기도니 내가 품고 있던 그럴 듯한 화두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때 언뜻 생각했던 것이 몸이든 영혼이든 자유로워야 하는 게 여행이지만 혹여 목적이 있어야 한다면 '아이들을 위한 여행을 하자'였고, 여행생활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그것은 진행형이다. 한때 내 꿈은 세상 배고픈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나누는 것이었다. 허기를 참지 못해 음식을 훔치고 약탈하고 심지어 시체 주머니를 뒤져가면서 동전을 찾는 아이들에게 도둑이라는 이름을 씌우는 것은 부당하다. 첫 인도 여행에서 내가 거리의 아이들에게 나눈 밥은 200인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 시간들이 얼마나 보람되었는지,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거리의 아이들이 밥접시를 들고 나를 향해 날려주는 미소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으니까. 내가 첫 인도 여행에서 배운 건 '밥이 곧 경전이고, 삶 그 자체라는 것, 현실에서 내가 느끼는 우울감이나 욕망은 과한 잉여 때문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 일을 계기로 나의 밥 나누기는 조용히 세계오지로 뻗어나갔고 히말라야 아이들과 아프리카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여행을 통한 이 시도는 언제까지 인간의 일을 신에게 맡길 수만은 없다는 것이었고, 이번 연재의 초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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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 세상의 아이들·1]#누가 #누구를 #용서하나요-아프리카 말라위편 지면기사
아프리카 말라위 아말리카 시골학교, "마담, 용서해 주세요. 이 아이는 돈을 훔치고자 했던 게 아니라 꽃무늬가 그려진 예쁜 주머니(지갑)가 너무 갖고 싶었다네요."여행자라면 바보가 되는것도, 상심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도 이렇게 간단하다.내가 아프리카에서 배운 건 낙천성이다. 태어나 한 번도 신발을 신어본 적 없고 벌거벗은 몸으로 빵을 구걸하면서도 아이들은 우울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주면 좋겠지만 주지 않아도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어요'아니면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어요'다.처음 보는 여행자에게 악수를 청하고 볼록 튀어나온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거나 신나는 노래로 환영인사를 한다.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그들이 늘 흥겹고 즐거우니 여행자인 내가 불편할 일이 없다.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손잡고 가는 것, 인류가 하나라는 걸 자각하는 것, 여행은 그런 것이 아닐까.■#누가 #누구를 #용서하나요*하쿠나 마타타(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아프리카 말라위 아말리카, 시골학교에 듣도 보도 못한 동양인 여자가 나타났다면 학교 전체가 술렁이고도 남을 일이다. 그걸 익히 아는 나는 학교를 방문할 땐 되도록 수업을 방해하지 않으려 신경을 쓰는데, 그날은 쉬는 시간이라 여느 때처럼 순식간에 아이들이 나를 에워쌌고 팔을 뻗으면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매달리곤 했다. 수십 명 아이들 속에 둘러싸여 있을 때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가리키며 날더러 뭐라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런데 친구의 지목을 받은 아이 눈빛이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 '뭐지?' 하며 다가가자 한 손을 뒤로 감추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아닌가. 주변 아이들 시선이 일제히 그 아이를 향했고,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뒤로 감춘 아이의 손에 신경이 쓰였다. "어디 볼까?"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게 내밀었다. "이게 왜 네 손에 있는 거지?" 알고 보니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내 조끼 주머니에 있던 잔돈 지갑을 슬쩍한 모양인데 아주 짧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