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4년 7월 25일 인천 옹진군 울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 전함의 포격으로 영국 국적 상선 고승호(高陞號)가 침몰했다. 청나라가 조선에 파견할 군인 수송선으로 활용하기 위해 빌린 이 배엔 청군 1천2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고승호의 침몰은 청일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인간들에게 역사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고승호가 침몰한 그 날부터 청나라의 군자금으로 쓰일 은덩이와 은화 약 600t이 실려 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소문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그리고 근래까지 약 100년에 걸쳐 계속됐다. 그리고 2001년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운영하던 대아실업의 투자사인 '골드쉽'이 고승호 발굴에 성공했다.
문제는 주식시장. 발굴이 진행되려는 시점에 대아건설 주식이 급등했다. 2001년 7월 30일 신문마다 이런 기사가 실렸다. '주식시장에서 '대아건설은 4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보물선 인양업체인 골드쉽이 청일전쟁 당시 서해안에 침몰한 고승호에서 은괴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는 등 요동을 치면서 '보물선 관련주'들도 덩달아 초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막상 인양된 고승호에는 소문과는 달리 약간의 은화와 엽전, 총기류, 탄알, 쌍안경, 선박용 온도계, 군인 신발, 도자기류 등이 발견됐다.
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돈스코이호가 연일 화제다. 한 기업이 '150조원의 금괴가 실린 보물선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주가가 급·등락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2003년 6월 3일 신문마다 이런 기사가 실렸다. '3일 증시에서는 보물선 관련주들이 급등해 주목을 받았다. 동아건설이 울릉도 저도 앞바다에서 금괴를 실은 것으로 알려진 제정 러시아의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침몰선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발단이 됐다. 이에 따라 장외시장에서 200~300원대에 불과하던 동아건설 주가가 800원대까지 뛰었다.' 하지만 동아건설은 그해 부도가 나 사라졌다.
끔찍한 폭염으로 불쾌지수가 연일 치솟고 있는 요즈음이다. '보물선' 소식이 청량제가 되어 서민들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씻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더 '선'을 넘는 것은 곤란하다. 허황한 꿈이 횡행하고, 거기에 사람들이 현혹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