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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비롯 갖가지 의료장비를 끌고 환자들이 하나 둘 건물 밖 흡연구역에 모이더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병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비흡연자의 눈에는 볼썽사나운 풍경이리라. 하지만 어찌하랴. 이들에게 흡연구역은 답답한 병실을 벗어나 한 모금 담배 연기에 잠시나마 근심 걱정 날려버릴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가 아닌가. 기회비용 측면에서 볼 때 이 순간만큼은 담배가 '건강 회복의 염원'보다 상위가치인 듯싶다. 환자의 흡연은 곧 담배의 수요가 웬만해서는 줄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흡연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과 맞물려 흡연자들 또한 일종의 피해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흡연자들의 피해의식을 부추기는 요인 중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잊을만하면 내놓는 정부의 금연정책이다. 금연정책에서는 흡연자가 '사회악' 취급을 받기 일쑤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정부의 금연정책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까지 모든 건물의 실내흡연실을 폐쇄하고 담뱃값에 부착된 경고그림과 문구의 면적을 현행 50%에서 75%까지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금연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종전의 금연정책과 다른 부분이 있다. 일단 '담뱃값 인상'을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그동안 담뱃값을 인상하면서 내 건 모토는 흡연율 저하를 통한 국민 건강 증진이다. 그러나 그간의 담뱃값 인상사례에서 보듯이 담뱃값은 흡연율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병원 흡연구역 사례에서 보듯 담뱃값 인상은 흡연자 자체를 줄이는 데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담배회사 수를 줄이는 것도 아니다. 수요공급곡선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경제학적 원리를 무시하다 보니 정부가 내세운 '국민건강'은 낯간지러운 수식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흡연자들 사이에서는 건강 운운하는 게 담뱃값을 인상하려는 '수작'쯤으로 인식된 게 사실이다. 더 나아가 담뱃값 인상이 아니라 세금 인상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정책은 '착한 금연정책'이라고 본다. 흡연자가 병·의원 금연치료에 나설 경우,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방안도 '돈만 밝히던' 기존의 금연정책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금연정책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