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는 고대 시대부터 인간과 함께 전투를 벌였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에서 로마군이 게르마니아 정벌에 셰퍼드와 전쟁을 치르는 장면이 나온다. 개가 군에 조직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다. 이 때부터 전 세계적으로 독일산 셰퍼드가 군견(軍犬)으로 사용됐다. 최근에는 셰퍼드보다 체격은 작지만, 책임감이 강하며 악천후에도 잘 적응하는 벨기에산 말리노이즈종을 선호한다.
2011년 5월 2일 미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이 빈 라덴의 은신처를 공격할 때 '카이로'라는 이름의 말리노이즈종 군견이 투입됐다. 카이로에 2천만원을 호가하는 적외선 카메라와 특수 제작된 방탄·방수 조끼를 입혔다. 빈 라덴 제거 작전에 군견이 투입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은신처 주변에 설치되어있을지 모를 부비트랩을 개의 뛰어난 후각을 통해 확인하는 게 첫 번째고, 또 하나는 개를 불결한 동물로 여기는 이슬람문화를 고려해 빈 라덴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빈 라덴 작전 후 오바마 대통령은 '카이로'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직접 간식을 수여했다.
빈 라덴 작전처럼 이번 이슬람 국가(IS)의 수장 알 바그다디 사살작전에도 군견이 투입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군견의 사진과 "대단한 일을 해낸 훌륭한 개!"라는 글을 함께 올렸다. 이번 군견 역시 말리노이즈종으로 몸에 부착한 최첨단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 상황이 백악관에 중계됐다. 군견에 쫓기며 도망치다 막다른 지하터널에 몰린 바그다디는 결국 '자살 조끼'를 터트렸다. 상황을 지켜 본 트럼프 대통령이 "알 바그다디는 자폭해 죽기 직전까지 도망치는 내내 훌쩍대고 울부짖고, 비명을 질러댔다"고 허세를 부린 걸 보면, 바그다디는 군견으로 인해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보통 군견으로 발탁되면 인간의 나이 65세쯤 되는 8~9세까지 활동하다 퇴역한다. 이때쯤이면 후각이나 탐지, 추적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늙은 군견은 살처분되거나 의료 실습용으로 제공돼 최후를 맞는다. 지난 8월 육군 32사단 기동대대 소속 군견인 수컷 셰퍼드 '달관'이가 10일 동안 실종됐던 여학생을 찾아내 국민적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당시 '달관'에게 1계급 특진과 훈장을 주라는 국민의 의견이 빗발쳤지만, 특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공을 대신했다. 현재 우리군은 1천300마리의 군견을 관리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