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901001273000060861

2003년 2월 프랑스 최고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가 자살했다. 미슐랭(미쉐린) 가이드로부터 별 셋을 받은 자신의 식당이 별 두 개로 강등될 거란 소식에 극심한 압박감을 받은 게 이유였다. 프랑스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하고 미국 뉴욕 타임스 1면에도 소개된 그였기에 프랑스 사회의 충격은 더 컸다. 도대체 미슐랭의 별이 뭐길래 천재 요리사 목숨을 앗아갔는가.

미슐랭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이 매년 발간하는 식당 평가서다. 1900년 서비스 차원에서 운전자에게 필요한 타이어 교체정보, 도로정보, 1천312곳의 식당과 숙소정보를 담아 무료로 배포했다. 점점 이를 찾는 이들이 많자 1922년부터 식당 지침서로 자릴 잡았다. 1931년 별 하나 '훌륭한 식당', 별 둘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 별 셋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이라는 별점 평가 시스템을 도입했다. 도로 정보가 너무 정확해 1944년 노르망디 작전 때 미슐랭 가이드 지도가 큰 몫을 했다.

엄격히 훈련을 받은 미슐랭 평가원들은 손님으로 가장해 직접 시식한 뒤 평가를 한다. 평가원은 요리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의 창의적인 개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일관성 등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별점을 매긴다. 하지만 평가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늘 "미슐랭은 과연 공정한가"라는 의문이 따라다녔다.

유럽 지역의 도시만 평가했던 미슐랭은 2005년 뉴욕 편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이때부터 '평가는 하지만 비평은 하지 않는다'는 미슐랭의 철칙이 깨졌다. 아시아 지역에선 도쿄, 홍콩&마카오, 싱가포르에 이어 2016년 4번째로 서울 편이 발간됐다. 미슐랭 식당은 서민이 쉽게 이용할 수 없을 만큼 음식값이 비싸 '부자들의 식탁'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자 '별 줄 정도는 아니지만 가성비 높은 식당' 이란 '빕 구르망' 등급이 생겼는데, 별이 없는데도 이를 따려는 음식점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서울 편 등재 레스토랑 선정과정에 금전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슐랭 브로커에게 컨설팅 비용을 요구받은 레스토랑이 이를 거부하자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슐랭 측은 의혹을 부인했지만, 왠지 찜찜하다. 미슐랭의 명성은 신뢰와 공정에서 나온다. 이게 무시되면 아무리 100년이 넘은 역사라 해도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