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경인일보가 기획한 '조선화가 아카이브Ⅰ황영준 展-봄은 온다' 전시회장을 찾은 시민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전시회를 시작으로 우리에게 낯선 북한 미술을 국내에 소개하고 아직 남한 내에서 체계적인 평가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던 황영준이란 인물을 조명하는데 역할을 한 황영준 전시회는 오는 18일 폐막한다. /경인일보DB

월북전부터 농민소재 등 좌익성향
이후 혁명전적지 다룬 풍경화 전념
선묘·몰골법 바탕 '점묘화' 개발도
수목·인물화 등 '조선화 기틀' 마련


북한 조선화(朝鮮畵)의 거장 화봉(華峯) 황영준(黃榮俊, 1919~2002) 탄생 100년을 맞아 경인일보가 기획한 '조선화가 아카이브Ⅰ황영준 展-봄은 온다' 전시회가 오는 18일 폐막한다.

지난해 12월 서울 전시회를 시작으로 18일 인천에서 폐막하는 황영준 전시회는 우리에게 낯선 북한 미술을 국내에 소개하고 아직 남한 내에서 체계적인 평가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던 황영준이란 인물을 조명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인일보는 인천 전시회 폐막을 앞두고 국내 미술계 인사 등을 초청해 황영준의 작품 세계와 전시회의 의미를 짚어보는 좌담회를 마련키로 계획했는데, '코로나19' 관계로 지상 좌담회로 대체하기로 했다.

■ 황영준의 작품세계

▲ 홍지석 단국대 교수

= 화가로서 황영준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황영준은 1949년 교통부에서 근무하며 서양화가 홍인표와 함께 미술전을 열었고 한국전쟁 이전인 1950년 봄에도 조병룡과 함께 2인전을 개최했다. 황영준은 1950년 서울에서 개최한 2인전에서 '철길', '공장풍경', '농촌풍경' 등 25점을 선보였다.

대부분이 노동자, 농민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황영준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 해방 공간에서부터 좌익 성향의 그림을 그려온 것으로 보인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월북한 황영준은 '혁명 전적지 화가'로서 항일 빨치산 전적지인 보천보를 1개월 동안 답사한 후 그림을 그리는 등 1958년을 전후로 소위 혁명 전적지를 다룬 풍경화 제작에 전념했다.

1970년대는 그의 작품 세계가 완성단계에 이르는 시기로 이전과 비교해 더욱 강렬하고 섬세한 조선화를 그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황영준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요약하며 '30대에 싹이 트고 40대에 대를 세우기 시작한 개성화가 끊임없는 자양분을 받아 50대에 비로소 자기의 면모를 드러냈다'고 자평했다.

北 작가 내면까지 정치적이진 않아
작품 주관성 접근땐 시각 다양해져
우리 미술계서 폄훼하는 기류 팽배
北 미술 전반 연구체계 확립 절실

■ 황영준의 화풍과 작품 기법

▲ 김천일 목포대 명예교수


= 화가 황영준은 말년까지도 연필을 놓지 않고 자연물과 인체에 몰입한 다수의 뛰어난 소묘 습작을 남겼을 정도로 기본기에 충실한 작가였다.

그는 화선지 위에 선묘(선으로 그린 그림)와 몰골법(윤곽선 없이 색채나 수묵을 사용하여 형태를 그리는 화법)을 바탕으로 하고 짙은 채색으로 점철하는 점묘화를 개발했다.

북한 조선화의 특징인 사실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황영준은 양지(洋紙·서양에서 들어온 종이) 위에 그리는 투명, 불투명 수채화를 남겼는데 수작이 많이 남아 있다.

황영준의 이런 기법은 1970년대 들어 원숙해지는데 기법의 세련미뿐만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심미안도 이때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황영준은 현장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완성한, 노력이 치열한 화가로 평가할 수 있다. 풍경, 수목, 화초, 인물화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형성해 냈고 북한 조선화의 틀을 잡는 데 크게 기여한 작가로 볼 수 있다.

▲ 김용철 고려대 교수


= 황영준 작품에 드러난 필묵과 색채 등 조형표현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중요하다.

동아시아의 회화사에서 필묵의 조화나 색채 사용 등의 문제를 고려했을 때 황영준의 회화는 필선에 비중을 두고 색채도 중시한 입장을 보여줬다.

이런 관점에서 황영준의 조형표현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그의 작품 세계에서 드러난 개성에 대해서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 북한 미술 연구의 한계와 과제

▲ 이소영 대구대 교수


= 북한에서는 개별적인 창작 활동이 존재하지 않으며 만수대창작사와 같은 국가 기관에 소속된 작가에 의해서만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여러 단계의 심의와 검열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식 예술이 외형상 정치적 수단이 되고 있다고 해도 작가의 내면까지 온전히 동일시 하도록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예술가는 자신이 감지하고 분별한 세계를 작품에 대입하며 작가 고유의 관점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독특한 세계를 그린다.

정신적 세계와 물리 세계가 연결돼 역동적인 삶의 형식을 구현해 내는 게 바로 예술이다. 앞으로 북한미술에 대한 연구가 작품 주관성에 대한 연구로도 확장된다면 북한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도 더욱 다양해지고 그 분야도 확대될 것으로 생각한다.

▲ 이양재 고려미술연구소장


= 아직도 북한 미술 연구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학문적이면서 문화적인 연구영역에 있어서 국가보안법의 저촉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냉전 논리만으로는 북한 미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북한 미술을 우리 민족사적 흐름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하고 민족미술의 일부로 연구해야 한다. 현재까지도 북한에서 발간된 미술 서적을 소유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북한 미술품의 입수와 유통도 제약이 많다. 북한 미술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그 작품을 봐야 하는데 현재 실정으론 쉽지 않다.

국내에 진품이 아닌 가짜도 다수 존재한다. 우리 미술계에서도 북한 미술 자체를 폄훼하고 작품성을 깎아내리는 기류가 팽배하다.

북한 미술에 대한 연구는 북한에서보다도 남한에서 더 활성화될 수 있고 그런 역량이 충분히 잠재돼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미술의 표현 주제에 따른 분야별 연구, 창작 재료에 대한 연구, 작가론 등 북한 미술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연구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정리/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