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지금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 전 같으면 '꿍짝꿍짝' 틀어대는 선거 로고송을 따라가면 그곳에선 어김없이 작은 유세가 열리곤 했다. 거기엔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안무를 곁들이며 "기호 ○번!"을 외치곤 했는데, 지금은 로고송을 듣기가 어렵다. 코로나19로 온통 세상이 뒤집어진 판에 노래를 잘못 틀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까 봐 후보자 간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무 조용하다.
2000년 16대 총선의 승자는 단연 이정현의 "바꿔"였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를 듣고 있으면 왠지 가슴속에 서늘한 무언가가 '훅'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때만 해도 가슴 속에 앙금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던 때라 누구에게나 뭐라도 바꿔야 한다는 열망들이 있었다. 그걸 '바꿔'가 충족시켰다. 트로트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도 마찬가지다. '내가 필요할 땐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중략) / 당신이 나를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갈거야'. 로고송을 위해 탄생했다 해도 손색이 없는 이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로고송은 선거운동의 꽃이다'. 하지만 로고송이 사라진 2020 총선. 소중한 무언가를 하나 잃어버린 느낌이다.
사라진 건 로고송만이 아니다. 후보자도 사라졌다. 후보자 얼굴을 볼 수가 없다. 합동유세가 사라진 탓도 있고, 마스크를 쓴 탓인지 아무리 둘러봐도 후보자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다. 후보자 간 TV 토론회도 언제 하는지 찾아보기가 '보물찾기'만큼 어렵다. 대신 '기호 ○번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장문의 카톡 메시지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후보자의 음성메시지가 전부다. 코로나19로 유행이 된 '언택트(비대면)'가 2020 총선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선거의 고질병인 '깜깜이 선거'가 2020 총선에도 예외 없이 재현되고 있다. 이런 탓에 후보자나 정당의 정책 검증은 아예 꿈도 못 꾼다. 내 지역에 누가 출마하는지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우리는 투표장에 가야 한다. 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4·15 총선의 이같은 풍경은 따지고 보면 국가나 우리 국민 모두에게 불행이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등줄기가 서늘하다. 이런 선거, 난생처음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