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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속에 스포츠 영웅 한 명쯤은 담아두게 마련이다. 내 경우는 프로레슬러 천규덕이다. 대부분 '박치기왕' 김일을 좋아했지만, 검정 타이즈를 입고 당수를 날리던 곱슬머리 천규덕이 그때는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원 공설운동장에서 레슬링대회가 열렸다. 김일이 출전하지 않은 걸 보면 A급 대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국적불명의 타이거 마스크와 천규덕이 한판 붙었다. 물론 천규덕이 이겼다. 날카로운 당수에 타이거 마스크는 꽁무니를 빼기에 바빴다. 선수 대기실 앞에서 기다리던 내게 천규덕은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며 사인을 해 주었다.

김일은 천규덕과 함께 60, 70년대 박치기와 당수로 국민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며 한국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우리 시대의 영웅들이었다. 김일 레슬링이 있던 날이면 우리는 만화가게로, 그도 여의치 않으면 동네에서 유일하게 TV가 있던 기봉이에게 온갖 아양을 떨며 구걸 시청을 하기도 했다.

'박치기왕' 김일은 1929년 전남 거금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56년 일본에 있던 역도산을 찾아가 '오오키 긴타로'라는 일본명으로 프로 레슬링에 입문했다. 김일은 '왕 주걱턱' 안토니오 이노키, 장신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역도산이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이들은 1970년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명승부를 펼쳤다. "레슬링은 쇼!"라는 장영철의 폭탄선언이 있기 전까지 프로 레슬링은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였다.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잊게 해주는 청량제였다.

하지만 '쇼'로 밝혀지면서 프로레슬링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김일도 천규덕도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졌다. 우리의 낭만도 사라져 갔다. 이후 김일은 경기 후유증으로 인한 지병으로 10여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2006년 77세의 나이로 영면했고, 2016년에서야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헌액됐다. 최근 김일의 유해가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된다는 소식에 까맣게 잊고 있던 김일과 프로레슬링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호랑이와 삿갓, 곰방대가 그려진 흰 가운을 입고 등장해 반칙을 일삼는 일본 레슬러들을 매트에 내리꽂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모두가 힘든 시절, 용기와 감동을 주던 '박치기왕'과 '당수왕'을 우리 기억에 남겨 두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래 그들을 잊고 있었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