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우리에겐 무하마드 알리로 더 잘 알려진, 프로권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비급 챔피언'이다. 소니 리스톤,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이 모두 그의 주먹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다고 그를 단순하게 권투선수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알리는 베트남전, 히피 문화, 인종차별 등 미국의 60, 70년대를 관통하는 격동의 시기를 헤쳐나온 '저항과 도전의 아이콘'이었다.
18세인 알리는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따고 고향 켄터키주 루이빌로 돌아온다. 이 젊은 금메달리스트는 백인전용 식당에 들어가려다 흑인이란 이유로 출입을 거절당하면서 큰 충격에 빠진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차별받는 흑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알리는 금메달을 미련없이 강물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결심한다.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베트남전 징병 거부와 인종차별 반대투쟁을 벌이고 급기야 1974년 흑인의 고향 아프리카 자이르 (현 콩고) 수도 킨사샤에서 조지 포먼과 타이틀전을 벌인다. '킨사샤의 기적'이라 불렸던 이 경기는 미국 흑인에게 아프리카를 조상으로 섬긴다는 자부심을 불어넣어 준 도화선이 됐다.
알리와 늘 대비됐던 슈퍼스타가 있었으니 바로 불세출의 농구천재 마이클 조던이다. 요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더 라스트 댄스'가 방영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조던은 알리와 전혀 상반된 길을 걸었다. 알리가 흑인의 인권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길을 헤쳐나간 데 비해 조던은 모든 것에 일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라스트 댄스'에도 언급되지만 1990년 흑인 최초로 노스캐롤라이나주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로 나선 하비 겐트가 지지 연설을 부탁했지만 조던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결국, 인종차별주의자인 제시 헬름스가 당선돼 조던은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이랬던 조던이 이번 미 인종 사태에 대해 "매우 슬프고, 고통스러우며, 정말 화가 난다 "며 "우리의 단합된 목소리로 지도자들을 압박해 법을 바꾸거나 투표를 통해 체제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비판 성명을 냈다. 정치적인 발언이나 사회적인 행동을 극도로 자제해왔던 조던의 성명이 의외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으로 슈퍼스타 조던이 던진 메시지의 울림은 매우 크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