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중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란 노래가 있다. 재정 전략 없이 우리가 재정을 운영하는 것은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바닷길을 가려는 것이나 똑같다." 2015년 5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느닷없이 윤극영의 동요 '반달'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지출증가를 막기 위해 무엇보다 페이고 법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무렵 정치판은 페이고 원칙이 뜨거운 화두였다. 하지만 국회 입법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서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흐지부지 끝났다.
'페이고 원칙'은 'Pay as you go(번 만큼 쓴다)'의 줄임말로, 예산 지출 계획을 짤 때 재원조달 계획을 함께 마련하도록 하는 제도다. 좀 더 고상하게 말하면 의무지출을 위해 새로운 입법을 하고자 할 때 이에 상응하는 세입 증가나 법정지출 감소 등 재원조달 방안을 동시에 입법화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의 과도한 예산 지출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어 장치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미국은 국가의 지출 증가나 재정수입 감소를 수반하는 법률안을 제출할 때 반드시 '재원확보 방안'도 마련하도록 하는 페이고 원칙을 법제화했다. 2010년 재도입하면서 2015년까지 5년간 550억 달러(약 67조 원)의 재정을 절감했다고 한다. 독일 역시 헌법에 페이고 원칙을 규정해 놓았다. 일본도 신규사업을 요구할 때 기존 사업을 폐지하거나 감축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페이고와 유사한 준칙으로 국가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무분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정부의 무분별한 예산 지출을 막아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감사원이 최근 '중장기 국가재정 운용 및 관리실태' 감사 보고서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국가부채나 재정수지 등의 한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재정준칙 도입을 권고하고 나섰다. 여기서 재정준칙이란 페이고 원칙보다 넓은 범위의 개념이다.
3차 추경에 이어 연말 세수 펑크로 인한 4차 추경을 추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덩달아 재정 건전성에 의문도 커지고 있다. 포퓰리즘의 남발을 막고 예산이 허투루 사용되지 않도록 우리도 페이고 원칙의 도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는 재정 폭망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