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대 총장을 지낸 김학준 박사가 쓴 '붉은 영웅들의 삶과 이상'은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자들의 발자취를 담은 책이다. 다소 이색적인 것은 김 박사가 이들 공산주의자들의 무덤을 순례하면서 그들의 삶을 풀어낸 책이라는 점이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무덤'은 소련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닌'의 무덤이다. 무덤 자체만을 놓고 볼 때, 레닌의 무덤은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못지 않게 공을 들인 무덤이다. 스탈린은 1930년 크렘린 궁전의 정면에 붉은 화강암으로 레닌국립묘지를 만들고 레닌의 시신을 안치했다. 사실 레닌은 이보다 6년 전에 숨져 다른 묘소에 묻혀 있었다. 레닌 사후 권력을 쥔 스탈린이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유해를 이장한 것이다.
레닌의 시신은 미라 상태로 보존됐는데 과학자들이 레닌 미라를 관리하는 과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과학자들이 열쇠를 돌리면 석관의 문이 열리고 이어 먼지를 방지하는 문이 열린다. 수류탄에도 끄떡없도록 설계된 문들이다. 다음으로 기계장치가 시신을 얹은 침상을 수레 위에 올려놓으면 수레가 레일을 따라 '작업실'(?)로 이동한다. 여기에서 과학자들은 레닌의 손과 얼굴에 사체보존 용액을 바르고 스테레오 카메라 촬영작업, 피부 색깔 분석 등을 진행한다. 보존상태가 얼마나 완벽했는지 레닌 사후 73년이 지나 한 대학교수가 "복제기술을 활용한다면 레닌을 현재에 부활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처럼 소중하게 다뤄진(?) '건국의 아버지'도 소련 해체 이후에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야 했다. 러시아 정부는 미라 보존을 위한 국가보조금을 끊었고, 레닌 묘소의 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졌다.
구소련시대, 레닌의 무덤은 이데올로기의 좌표였다. 레닌의 무덤은 그 좌표가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당 의원들이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이장하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찬반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독립군을 탄압한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으로,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백선엽 장군이다. 어찌 보면 반공이데올로기와 반일이데올로기의 충돌이다. 역사가 뿌린 불행의 씨앗을 언제까지 품고 살아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