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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북에서 날려보낸 삐라를 몇 차례 주워봤다. 겨울철 동네 어귀 논밭에서다. 지폐 크기에 삽화는 조잡하고, 구호는 살벌했으나 놀라지는 않았다. 반복된 반공교육의 효과일 것이다. 손에 쥔 삐라는 다음날 학교 선생님께 드렸다. 삐라를 소지하는 건 나쁜 행동이라고 배웠다.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 국민 혈세 170억원을 들여 2018년 9월 준공한 화해·공존·평화의 상징물이다. 황해도 해안가 포문이 개방됐고, 북측 GP 초소가 재건됐다.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은 피의 보복을 언급했다.

김 부부장의 분노와 남북경색을 부른 건 대북전단이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절대로 용납치 못할 적대행위'라고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버러지 같은 자들이 우리의 최고 존엄까지 건드리는 천하의 불망종 짓을 저질러도 남조선에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고 했다. 인간쓰레기들의 경거망동이라는 폭언이 뒤따랐다.

대북전단은 남·남 갈등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파주·연천 등 접경지에서는 보수단체와 진보단체가 옥신각신한다. 경기도는 대북전단 살포를 '사회재난'으로 규정해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대북전단을 주도하는 보수단체 대표의 무허가 주택은 철거 절차를 밟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 공관과 분당 사저에 경찰력이 배치됐다. 도청사 방호 인력도 늘렸다. 한 보수성향 인사가 이 지사 집 근처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이를 막으면 가스통을 폭파하겠다고 위협하면서다.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북한엔 항의 한 번 못하면서 힘없는 탈북자 집엔 공무원을 동원해 요란한 쇼를 연출했다"고 비판한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전단 살포는 법적으로 재난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과잉 행정이라고 했다. 이 지사는 "대북전단 살포로 북한을 자극해 접경지역 도민들을 군사적 위험에 노출시키는 게 사회재난"이라고 반박했다. 입씨름이 인신공격으로 격화하고 있다.

영어 'bill'에서 유래한 일본말 삐라는 2차대전 말 연합군이 처음 사용했다. 대표적인 심리전 매체로 한국전쟁에서 맹위를 떨쳤다. 북한은 대남전단을 뿌리겠다고 예고했다. 내용 일부도 공개됐다. 삐라가 한반도에서 제2 전성기를 맞고 있다. 복고풍(Retro style)이 유행이라지만 백해무익한 사특한 바람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