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전'은 전쟁 없이 상대를 굴복시키는 고도의 전쟁기술이다. 그중 확성기 방송을 '심리전의 꽃'이라고 한다. 비무장지대(DMZ)에서 확성기 방송이 시작된 건 1962년부터다. 시작은 북한이 먼저 했다. 우리보다 경제상황이 좋았던 북한은 시도 때도 없는 대남방송으로 우리 병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한밤중 '불효자는 웁니다'를 틀어대면 병사들은 소리죽여 울음을 삼켰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대남방송에 속아 상당수가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경제력이 북한을 넘어선 1980년대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우리 확성기는 야간에 24㎞, 주간에 10여㎞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만큼 고음질을 자랑했다. 이를 통해 일기예보 같은 생활정보에 대중음악까지 곁들이며, 간간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면서 북한 병사의 마음을 흔들었다. 반면 북한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질이 너무 떨어져 우리 병사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등 '햇볕정책'의 영향으로 확성기 방송시간과 횟수가 크게 줄었다. 북한 측의 지속적인 방송 중단 요구도 한몫 했다. 북한 병사들이 대북방송에 심하게 동요한 게 원인이었다. 마침내 남북은 장성급 군사회담 후속 합의서를 통해 MDL(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을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2004년 6월 15일 0시를 기해 확성기를 모두 철거했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조치로 MDL 일대 11곳에 다시 대북확성기가 설치됐지만, 방송은 하지 않았다.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공격으로 다시 대북방송이 재개됐으나 북한이 우리 쪽으로 1발의 포탄을 발사하고 우리가 포탄 20발을 대응 포격하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합의에 따라 양쪽 모두 40개의 확성기를 철거함으로써 DMZ에 60여 년 만의 고요가 찾아왔다.
북한이 2년 만에 DMZ 20여 곳에 대남 확성기를 다시 설치했다. 효과가 없을 텐데 무모하게 설치한 걸 보면 꽤 다급했던 모양이다. 위기상황을 느끼면 협박과 폭언으로 전쟁 열기를 고조시키는 수법은 북한의 전매특허다. 이는 내부결속을 다지고 전쟁공포를 키워 우리의 국론분열과 갈등유발을 겨냥한 일종의 심리전이다. 지나치게 양보하면 상대는 늘 깔보게 마련이다. 북한이 방송을 시작하면 우리도 '심리적 핵폭탄'인 대북 확성기 방송을 고려해야 한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