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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꽃이 그렇게 많은데 그들은 유독 터키에서 들어 온 '튤립'에 푹 빠졌다. 처음 본, 단아하고 명징한 꽃잎에 모두 넋을 잃었다. 빚어낸 조각인가 했는데 만져보니 살아있었다. 때는 1610년대 초반, 네덜란드에 '튤립 광풍'이 불었다. 노랑, 빨강 등 단색의 꽃잎보다 다채로운 색상이 어우러지거나 줄이 가 있는 변종에 더 값이 치러졌다. 꽃값은 순식간에 천정부지로 뛰었다.

처음엔 튤립 구입은 귀족들의 호사한 취미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 농민 등으로 확산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산업의 호황과 동인도회사로 유럽에서 가장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다. 모두 주머니에 돈이 넘쳐났다. 누구나 튤립 한 송이 정도는 살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냥 꽃을 사고파는 정도였으니까.

소동은 이듬해 수확하는 튤립 뿌리 선물거래에서 발생했다. 현물시장에서 튤립 값이 급등하는 걸 체험한 사람들이 튤립 뿌리를 사려고 선물거래에 몰렸다. 조금 희귀하다 싶은 튤립 뿌리 하나가 '새 마차 한 대. 말 두필'과 교환됐다. "희귀종만 손에 쥘 수 있다면 가게를 넘기겠다"는 자영업자들도 부지기수였다. 누가 봐도 '버블(bubble)'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꽃이 피기 전까지는 어떤 색깔의 꽃이 필지 알 수 없었는데도 너도나도 뿌리 사재기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튤립 광풍은 1637년 2월 한순간에 거품이 꺼졌다. 가격은 100분의 1로 폭락했다. 눈물과 탄식이 네덜란드를 뒤덮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파산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튤립 파동은 거대한 '버블경제'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일확천금을 노리며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들의 심리상태를 가리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도취적 열병'이라고 지칭했다.

주식시장이 뜨겁다. 특히 제약 바이오 등 일부 종목은 마치 2000년 초반 IT 광풍을 연상케 한다.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해 최근 상장된 SK 바이오팜의 연속 상한가는 실적이 아닌 기대심리에 따른 것이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불안감과 신약 개발의 기대감이 맞물리며 거대한 버블을 형성한 느낌이다. 물론 시장에 풀린 막대한 자금도 한 몫 하고 있다. 곧 공매도가 풀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튤립 파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조심 또 조심할 때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