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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로는 1950년 8월1일부터 9월24일까지 55일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와 학산리 일대에서 벌어진 다부동 전투를 꼽는다. 우리 군과 미군의 첫 연합작전이라 그 의미는 크다. 광복절을 부산에서 치르겠다는 김일성의 호언에 인민군의 공세는 격렬했고, 패배하면 전쟁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여서 우리 군 역시 방어에 사활을 걸었다. 그날 우리가 졌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그때 그 전투의 지휘관은 백선엽 1사단장이 있었다. 극도로 사기가 저하된 사병에게 백 사단장의 그 유명한 말 한마디, "내가 등을 돌리면 나를 쏘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고지로 뛰어오르자 병사의 사기가 높아졌다. 그의 그런 호기로움에 미군의 막강 화력까지 더해져 마침내 승기를 잡았다.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던지 우리 군 2천300명, 미군 1천200명, 인민군 5천70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히자 백 장군의 1사단은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하는 부대가 됐다. 백 장군은 1952년 32세로 최연소 육군참모총장이 됐고 이듬해 대한민국군 최초의 4성 장군에 올랐다. 정전 회담 때는 한국군 대표로 참가했다. 백 장군은 1959년 합참의장을 지낸 뒤 1960년 5월 31일 예편했다. 그 후 프랑스, 캐나다대사와 교통부 장관을 두루 거쳤지만, 일체의 정치 활동은 하지 않았다. 다부동 전투의 영웅이자 창군 원로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지난 10일 별세했다. 향년 100세.

백 장군은 '한미동맹의 상징'이다. 우리보다 미군들로부터 더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지난해 11월 99세 백수(白壽 )기념 잔치도 미 8군이 준비했다. 그날 백 장군 앞에서 무릎을 꿇어 예의를 다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모습은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부음을 접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진심으로 그리워질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정부의 백 장군에 예우는 너무도 인색하다. 백 장군이 친일 전력이 있다는 일부 정치권의 극렬한 반대에 서울 현충원 대신 대전 현충원 장군 2 묘역에 안장된다. 더불어 민주당에선 백 장군의 죽음에 그 어떤 성명서도 내놓지 않았다. 국론은 또 반으로 갈라졌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사라진 노병은 하늘에서도 우리 조국을 지켜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