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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러시아의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를 돕자고 의기투합했다. 지난주 프랑스 대통령의 여름 별장지인 지중해 연안 브레강송 요새에서 가진 정상회담 자리에서다. 두 정상은 나발니 측에 병원 치료나 망명, 보호조치 등 필요한 모든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발니는 지난달 중순 여객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로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러시아 옴스크 병원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이송돼 현지 샤리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웃인 프랑스와 독일은 숙적이다. 침략과 약탈, 양민 학살의 흑역사가 반복됐다. 역대 정상 간 사이가 좋을 리 없다. 마크롱과 메르켈은 이런 통념을 깨고 밀월 중이다.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다정한 오누이 같았다.

마크롱은 2018년 메르켈이 위기일 때 앞장서 도왔다. 총선 패배로 연정 구성에 실패해 낙마 위기에 몰린 메르켈을 지원 사격했다. 마크롱은 "메르켈 총리는 유럽에 대한 열망을 보여줬고, 사민당의 대표도 마찬가지다. 연정의 골격 역시 그렇다"며 사민당의 연정 참여를 촉구했다. 사민당은 연정에 참여키로 했고, 메르켈은 사지(死地)를 벗어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달 말 사임 발표를 했다. 일본 헌정 사상 최장기간 집권 기록을 세웠다. 각국 정상들이 그의 업적을 치하했다. 아베는 트위터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상왕(上王)'으로서의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다.

'친절한 아베 씨'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감사 인사를 받지 못했다. 문 대통령도 아베에게 트윗을 날리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시진핑 주석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과 아베는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뒤 한 번도 일본을 국빈방문하지 않았다. 아베 역시 현 정부에서 대한민국을 공식방문한 적이 없다. 정상회담은 수차례 가졌으나 제3국이거나 G20 등 정상회의 기간 짬을 낸 이벤트 성격이었다.

새 총리로 지명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취임해도 양상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위안부 문제와 징용 배상 등 현안은 꼬여있고, 양국 국민감정도 나빠진 상황이다. 이웃이 가까우면 사촌보다 낫지만, 원수지간이면 역사가 불행해진다. 브레강송의 밀월은 너무 먼 나라의 동화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