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이후 중국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요우커(遊客)가 급증한 2010년대 초반, 수도권과 제주 등지는 숙박시설이 절대 부족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모텔까지 동원했으나 태부족이었다. 눈치 빠른 부동산 업자들이 숙박업 사업에 뛰어들었다. 호텔 운영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피하려 수익형 모델을 장착했다. 투자자가 객실을 구분 등기할 수 있고, 운영사가 매월 임대수입을 주는 구조다.
객실이 부족한 데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자 투기꾼이 몰렸다. 순항하던 호텔 업계는 2014년 사스가 유행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2017년 중국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에 대한 보복으로 자국민의 단체관광을 금지했다. 이후 3년간 요우커가 30% 급감했다. 지난해 회복세이던 관광업계는 올 초 시작된 코로나 19로 다시 치명상을 입었다. 전국 관광호텔 상당수가 극심한 운영난에 숨만 붙은 '좀비' 상태다.
이낙연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전세난을 말하면서 호텔 객실을 활용하겠다고 언급했다. 지난주 관훈 토론회에서 부동산 대책 관련 질문에 답하면서다. 이미 국토부가 엠바고(보도 유예)로 예고한 내용을 미리 흘린 것이다. 어설픈 누설이다.
반응은 더 실망스럽다. 전국에서 지탄이 쏟아졌다. 야권은 비판을 넘어 어린아이 놀리듯 조롱한다. 야당 대변인 입에서 '초등학교 학급 회의 수준의 대책'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전세 난민에서 월세 난민으로 밀려난 국민에게 호텔을 개조해 전셋집을 만들어 준다는 정부는 국민을 '일세 난민'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가 숭인동 호텔을 개조한 청년 주택은 난방과 창문 구조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숙박용과 주거용 건물의 차이를 간과한 때문이다. 입지 여건도 썩 좋지가 않다. 입주자들은 주변보다 임대료가 월 10만 원 정도 싸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다고 불평한다.
국토부가 19일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전세난 타개를 위해 2022년까지 전국 11만 4천 가구, 수도권 7만 1천 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그런데 뭇매를 맞는 숙박시설 활용 방안이 버젓이 포함됐다. 나중이야 어찌 되든 성난 민심을 달래고 보자는 정부의 다급한 처지가 딱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