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기관 이전 발표 이후 지난 석 달 동안, 1인 시위, 기자회견 등 많은 일이 있었다. 국회의원, 도의원, 민주노총, 지역민, 경찰 등 온갖 사람들을 만났다. 함께해 준 고마운 사람들만큼, 앞뒤가 다른 사람, 비겁한 사람들을 보며 씁쓸했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환멸이었다. 저들처럼 나 역시 가짜가 돼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게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었나?', 자문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책사들의 협잡이며 모사들의 음모는 사극에나 나오는 줄 알았다. 체스 말이 돼 옳은 말 대신 각본을 읊는 정치인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로 정치 기획에 참여하는 공무원들, 공정이며 주권자 운운하나 도무지 주권자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기 어려운 자칭 행정가. 뒷이야기를 빤히 아는데 사실과 다른 말을 늘어놓는 꼴들은 참으로 역겨웠다.
기각 판정 이후, 지사님은 페이스북에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했다. 당연하고 상식적으로 흘러가는지 살펴보겠다. 지난 3년간 어울리지도 않는 경력 가진, 아마도 그들의 사람들이 이사회를 채웠다. 자율적으로 이사회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독립 기관이라고 하셨으니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상식적이고 당연하겠다. 압력을 행사하는지도 보겠다. 그리고 부당한 압력은 좌시하지 않겠다. 열린 채용 가로막았다고 인사부서장을 바꾸려 들던 걸 기억한다. 예산을 깎고 감사를 하면서 직원들을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대단하신 분들이 보기엔 우습겠지만 나 또한 조합원에게 선출된 조합 대표이고 조합원을 보호하는 건 조합 대표의 상식적이고 당연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반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대단한 기득권인 양 악플을 쏟아냈다. 노동자나, 약자의 편이라면 할 수 없는 욕설과 댓글들을 보면서 거꾸로 연대의 마음을 배웠다. 간신히 '취뽀'한 신입 직원이 기득권이고 20년 넘은 직장 생활 만에 간신히 아파트 한 채 장만한 사람이 무슨 기득권일까. 돈 몇 푼 보상받자고 생떼 부린다는 말도 들었다. 우린 일방적인 결정으로 기본권이 침해받고 소통 없는 독주로 상처 입었다고 했을 뿐이다. 나는 보통 사람이다. 그래서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억울한 사람, 상처 입으면 아픈 나 같은 또 다른 억울한 보통 사람을 두고 볼 수 없는 것뿐이다. 반대 의견은 노동자를 소중하게 여겨달라, 정말로 억울한 사람이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달라는 게 전부다.
요새 청년들이 정치에 분노하는 이유를 나는 잘 알겠다. 10여 년 전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뭘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어른이 됐는데 누구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표로 보여줬더니, 말도 안 되는 걸 정책이랍시고 떠들어 댄다. 이대로 청년들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같다. 단 한 명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우리 얘길 들어줬다면 감히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슈퍼 갑인 경기도에 이처럼 강하게 저항했을까? 가처분 기각, 이 결정이 이처럼 참담하고 억울했을까? 마지막으로 신국(City of God)의 문장을 옮겨본다. '정의 없는 권력은 도적과 같다'. 부디 우리를 상처 입힌 권력이, 고작 표 얻자고 사람을 함부로 다루는 정의 없는 권력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성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노동조합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