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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옥 (시인·수필가)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거리마다 내걸려 있는 현수막의 구호만큼이나 우리는 호국영령들을 기리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내 자신부터 생각해보니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6·25가 끝난 지도 벌써 71주년이 되었다. 산하를 핏빛으로 물들이며 이 나라를 지킨 영령들이 있어, 오늘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이 땅에 살고 있다.

71년 전 북한의 무력남침으로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내주고, 100일도 안 되어 국토의 90%를 적에게 점령당하고 부산마저 함락 직전까지 이르렀을 때, 위기에 빠진 조국을 지키겠다고 전쟁터로 뛰어든 젊은 우리 용사들과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도움으로 나라를 구하게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기까지 1천129일 동안 밀고 밀리는 전쟁터에서 한국군 62만1천479명과 유엔군 15만4천881명의 희생을 가져왔다.

전쟁은 휴전되었지만 북한의 휴전협정 위반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도발해 오고 있다. 이 모든 도발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된 영령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금쪽같은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월을 이들을 기리는 달로 정하고 각종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 필자도 그간 하지 못했던 영령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국립묘지를 찾았다.

전쟁터에서 유골조차 찾지 못한 '호국영령 무명용사의 비' 앞에 헌화하고 빼곡히 적힌 10만여 용사들의 이름표를 둘러보고, 참혹했던 그날을 되새기며 임들의 숭고한 희생에 머리 숙여 참배했다. 임들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대한민국이 자손만대까지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발전해 갈 수 있도록 나의 본분을 다 하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며칠 전 어느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다. "미국의 한 6·25 참전 용사가 90세로 양로원에서 홀로 오랜 세월을 지내다 죽음을 맞이했는데, 하나뿐인 외동딸도 병으로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자, '유가족을 대신해 젊은 시절 한국을 위해 싸운 미 군인의 상주 역할을 부탁드립니다'라고 공지를 했는데, 수천 명의 지역 주민들이 참여했다"는 내용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6·25 참전 용사를 수천 명의 지역 주민들이 경의와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기꺼이 찾아 주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힘인 것 같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그만큼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이 높다고 저절로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 나라도 아닌 먼 나라, 대한민국의 6·25 참전 용사에게까지 미국 시민들이 표하는 무한한 존경과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며 깊이 각인 시키는 이야기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있은 한국전 참전 노병에 대한 명예훈장 수여식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노병을 위한 기념사진 촬영 자리에서 무릎을 쪼그리고 앉는 예우의 모습 또한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이처럼 위대한 시민의 모습은 오랜 세월 동안 생활 속에 뿌리 내린 의식의 표출이다.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선진 시민의 의식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이제는 구호에만 그치는 형식을 벗어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호국영령들을 보훈하고 기리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오늘 국립묘지를 찾아 '호국영령 무명용사의 비' 앞에 작은 꽃 한 송이를 헌화하며, 이 정신이 나라를 지킨 영령들에 대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마음의 시발점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시인·수필가 변광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