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9년 일제는 왕족이 사는 창경궁을 유원지로 꾸몄다. 궁내에 동물원을 만들고 일본식 정원과 건물을 들였다. '창경원'으로 개명해 격을 낮췄다. 20여 년 뒤 수백 그루 벚꽃을 심었고, 식물원을 열어 경성 최고의 구경거리로 단장했다. 해방 뒤에도 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인파가 몰리면서 성수기엔 주말마다 교통지옥이 됐다. 1986년 창경궁으로 복원하면서 일부 벚나무는 베어지고, 동·식물은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겼다. 창경궁은 고즈넉한 원형을 되찾았다.
창경원 시절, 봄철 개화기엔 밤늦도록 조명을 밝히고 행락객을 받았다. 화사한 벚꽃 무리는 청춘을 유혹했다. 80년대 초 어느 날, 창경궁에서 밤 미팅(속칭 야사쿠라팅)을 하려 젊은 남녀 6명이 모였다. 여학생 넷 남학생 둘이었는데, 짝을 맞출 나머지 둘은 끝내 오지 않았다. 미팅은 깨졌고, 다음 날에야 알게 된 사정이 딱했다. 입장료를 아낄 요량으로 비원 담장을 넘다 경계를 서는 초병들에게 발각돼 밤새도록 얼차려를 받았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고, 청와대는 시민들에게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TV를 통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만 봤던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 녹지원과 상춘재를 누구나 드나들게 됐다.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에 하차해 경복궁~청와대~북악산으로 가는 등반로도 개방된다고 한다. 시기도 취임 직후인 5월 10일이라고 단정했다.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청와대는 국민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이용하는 '시민공원'으로 변모할 전망이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방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여·야 정치권 입장은 극명하게 갈린다. 막대한 비용과 안보 공백을 초래하는 무리수란 비판에, 백악관보다 더 나은 입지란 반론이 맞선다. 그래도 이전 자체를 막겠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전엔 "청와대는 높은 권부를 상징하는 용어가 아니라, 서울의 대표 휴식 공간을 뜻하는 용어가 된다"고 했다.
청와대 개방은 70년 넘는 권위와 불통의 세월을 통째 바꾸려는 결단이다. 25만㎡ 넘는 공간을 국민에 돌려주겠다는 당선인의 강력한 의지가 담겼다. 녹지원과 상춘재 정원의 벚꽃은 봄날의 백미다. 누가 흉지(凶地)라 했는가. 서울 복판에 이만한 길지(吉地)가 또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