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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성남 주민교회 김해성 목사는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던 스리랑카 청년 2명을 태워주었다. 김 목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외국인노동자의 집'에 재워주고 직장도 구해줬다. 소문이 나면서 찾아온 스리랑카 노동자가 200명에 달했다. 스리랑카 명절에 파티를 했는데, 스리랑카 국회의원인 마힌다 라자팍세가 초청인사로 참석했다. 차를 태워주고 취업을 시켜준 노동자의 작은 아버지였다.

2005년 대통령이 된 라자팍세는 답례로 김 목사를 수차례 초청했다. 수도 콜롬보 중심부에 15㏊의 부지를 제공해 한국어 학교, 병원을 짓도록 했다. 김 목사를 통해 고속도로, 주택, 쓰레기소각장, 열병합발전소 건설, 유전개발에 한국 정부나 기업이 참여하도록 요청했다. 2010년 재선하자 우정의 표시로 김 목사에게 어린 코끼리 한 쌍을 선물했다. 당시 국내 동물원에는 임신이 가능한 젊은 코끼리가 없었다. 같은 해 9월 한국에 온 코끼리 부부는 서울대공원에 살림을 차렸고, 6년 뒤 부모가 됐다. 코끼리가 국내에서 번식에 성공한 첫 경사다.

2018년 9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풍산개 한 쌍을 선물했다. 수컷은 '송강', 암컷은 '곰이'다. 이후 곰이가 새끼 6마리를 낳으면서 8식구 대가족이 됐다. 5년간 청와대에서 반려견 생활을 했는데, 퇴임 시점이 되면서 앞날이 불투명하다.

청와대는 "풍산개 가족은 정상회담 선물이라 대통령 개인 소유가 아니라 국유재산"이라고 한다. 사료비와 각종 비용도 사비로 지출하는 다른 반려동물과 달리 국가 예산을 쓴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곰이의 다정한 모습이 수차례 공개됐다. 하지만 퇴임 뒤 양산 사저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토리 아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풍산개 인수인계와 관련, "정상 간이라고 해도 키우던 주인이 계속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을 볼 때 사람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정을 많이 쏟은 주인이 계속 키우는 것이 선물 취지에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만 반려견을 준다면 잘 키우겠다고 했다.

대통령과 당선인은 청와대 이전, 인사, 사면 문제로 대척에 섰다. 만남은 어그러졌고, 기약도 없다. 청와대 반려견을 두고도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된다. 풍산개들도 주인 심기와 눈치를 살피느라 심기가 편치 않을 듯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