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喝)'은 선승들이 즐겨 쓰는 감탄사다.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는 진리와 마음자리를 가르치거나 수행자들을 독려하거나 질타할 때 내는 고함소리다. 임제 의현(臨濟義玄, 미상~867) 선사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할을 자주 사용하여 유명세를 치렀다. 덕산 선사는 할 같은 고함 대신 몽둥이를 썼는데, '덕산의 몽둥이와 임제의 고함소리'를 이른바 덕산 방 임제 할(德山棒 臨濟喝)이라 한다. 모두 격외(格外)의 가르침들이다.
선사들은 '할'을 썼지만 지금 우리는 '헐'을 쓴다. 헐 같은 감탄사는 독립언으로 다른 문장 성분들과는 관련 없으나 경우에 따라 백마디 말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감탄사는 우리말의 9품사 중 하나로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의지 또는 응답으로도 쓰인다.
우리말에서 널리 사용되는 감탄사들로는 하이고·어머나·그것 참·쳇·젠장·얼씨구·아뿔싸·맙소사·오호라·애걔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말은 상황과 언어습관에 따라 맞춰 쓸 수 있는 감탄사가 풍부하고 많은 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감탄사들이 사라지거나 사용의 빈도수가 줄어들고 있다. 연령과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감탄사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요즘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든 감탄사가 '헐' 아니면 '대박'이다. 영미권 국가에서 그레이트(great)란 추임새를 자주 섞어 쓰고, 국내에 있을 때는 '헐'과 '대박'이란 말만 적절하게 써도 사회생활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다.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러면 헐과 대박이 요즘 들어 감탄사의 우세종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시대와 환경의 영향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2일 현재 소득 3분위 중산층 가계가 부담하는 가계대출이 일 년 사이에 27%나 수직 상승하면서 2019년 통계 개편 이후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 해 동안 이자 부담만 17조원이 더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종부세 납세자도 대폭 늘어 122만명을 돌파했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감탄사는 헐과 대박밖에 없다. 여기에 민생은 구호뿐 정쟁으로 점철된 정치권과 대통령 출근길 문답의 전격적 중단 역시 헐 말고는 다른 대체 감탄사를 찾을 수 없다. 우리의 풍부한 감탄사들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보다 여유롭고 넉넉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