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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스틸컷.

혐오의 또다른 형태는 '무관심'이다. 누군가를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용히 지운다.

지난 2021년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됐지만, 홍등가에서 공가로 변했을 뿐 폐쇄 당시 그린 미래는 여전히 청사진에 불과한 상태다(2022년 12월 22일자 7면 보도=[홍등가에서 공가로 변한 집창촌·(下)] 전국적 개발 지지부진… 활성화 방안은). "선입견이 강한 공간이어서 문화공간으로 홍보하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한 도시계획 전문가의 말처럼 성매매 집결지는 그곳의 여성들과 함께 '조용한 혐오' 속에 묻힌다.

뮤지컬 요소 가미 경쾌한 연출 '역설'
공감하기 힘든 일생에 동화되는 경험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그 누구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하는 '조용한 혐오'를 아름답게 파헤친다. 기구한 한 여성의 일생을 뮤지컬적 요소를 가미해 역설적으로 경쾌하고 화려하게 풀어냈다.
 

멀리서 봤을 때, 주인공 마츠코(나카타니 미키)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매번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일삼아 스스로 인생을 꼰 인물이다. 중학교 교사이던 그는 동료 교사 지갑에서 돈을 훔쳐 직장에서 잘리거나, 자발적으로 성매매의 굴레에 들어가기도 하고, 비뚤어진 사랑에 심취해 자기 파괴적인 연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마츠코의 일생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비추는 데 할애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아주 가까이서 마츠코의 희로애락을 속속들이 마주한다. 특히 이런 연출은 제3자인 '관객의 입장'과 극에서 펼쳐지는 세계의 '보편적인 입장'이 극명하게 대비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관객들은 어떻게 마츠코의 마음이 조금씩 헐어가는지 목격하며, 상식적이지 않은 선택을 해온 마츠코를 그럼에도 이해하게 된다. 반대로 영화 속 주변 인물들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마츠코를 '손절'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가장 친밀한 존재인 가족조차도 연을 끊는다.

관객들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며 잠시나마 현실 세계와는 입장이 뒤바뀌는 영화적 경험을 한다. 언뜻 봐선 도저히 공감하기 힘든 특이한 존재에 동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밖 우리네 현실은 오히려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양식과 비슷하다.

현실서도 성매매 여성들 '조용한 혐오'
죽음 뒤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져


마츠코 같은 시민은 '안타까운 피해자'나 '구조적 희생자'라는 범주로 손쉽게 묶을 수 없기에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불쌍한 감정을 유발하지 않는 약자는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받거나, 너무도 간단하게 정신 이상자로 치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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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스틸컷.

실제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될 당시, 일부 여성들은 사회 회복 지원을 거부하고 다른 지역 성매매 집결지로 이주했다. 수원시 남수동(2022)과 김포시 감정동(2023)에서는 복지 수혜를 거절한 채 자발적 고립을 택한 이들의 존재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는 일이 있었다.

'스스로 팔자를 꼰다'는 비웃음만 자아낼 뿐, 이들 사례에 연민은 통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동정심도 북돋기 힘든 '조용한 혐오'는 공론화하기 어려운, 풀기 까다로운 복잡한 방정식인 셈이다.

무관심이 드리운 그늘에 머문 다양한 마츠코들의 삶과 죽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며 관객들이 잠시나마 마주했던 영화적 경험이 실제 현실에도 가닿을 수 있을까.

'조용한 혐오'를 딛고 최소한 연민이란 감정으로 번질 여지를 넓힐 순 없을까. 어쩌면 해답은 이들 삶을 이해해보려는 마음과 이를 설명할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섬세한 노력에 있을지도 모른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