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욱의 '노인이 많은 병원 302호 : 기억하는 사람'
힘겹게 식사·치매 오래된 목재로 형상화
노화의 과정 은유적으로 녹여 '공감' 의미

누구나 노년을 맞는다.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우리에게 더더욱 노년의 삶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가의 시선에서 노인의 시간은 과연 어떤 형상으로 담길 수 있을까? '노인이 많은 병원 302호 : 기억하는 사람'은 느린 움직임으로 늙은 환자의 시간에 우리를 이끈다.
작가 양정욱의 전작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일상의 면면을 채우는 삶의 모습들을 형상화한다. 작가는 일상의 부분들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삶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면모를 사유하고 형태와 움직임으로 구사한다. 이러한 작업은 이야기를 수집하고 구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쳐 버리기 쉬운 순간이나 부분, 혹은 종업원이나 안내원, 경비원과 같이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주목받지 않는 이들의 직업에 대한 관찰로부터 이야기를 구상하고 소소한 깨달음을 공유한다. 이 이야기들은 작가가 수작업한 목재의 추상적 구조와 전동장치의 기계적 움직임, 역학적 리듬 등을 통해 작품으로 재현된다.
작가의 작품에서 목재는 대개 자연스러운 무늬와 휘어짐을 가진 오래된 나무이며, 목재의 움직임은 거창하고 매끄러운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정밀하고 반복적인 운동과 이따금씩 삐거덕거리는 움직임으로 묘사된다.
작품들은 '서서 일하는 사람', '그는 선이 긴 유선전화기로 한참을 설명했다',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 '날벌레가 알려준 균형 전문가의 길' 등과 같이 시적인 제목으로 서사적 깊이를 더한다. 평범했던 일상의 순간들이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을 통해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와 인간적인 감정으로 전해진다.
'기억하는 사람'은 작가가 늙은 환자들의 모습에서 힘겹게 먹거나, 침침한 눈으로 보거나,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등의 특징을 표현한 '노인이 많은 병원 302호' 연작 중 하나이다.
기력이 쇠한 노인의 신체와 움직임은 작품에서 느리게 돌아가는 구동력, 삐걱거리는 소리와 동작, 깜빡이는 기억과 같이 반짝이는 빛 등으로 구현된다. 노화로 인해 기억이 흐려지고, 기능이 더뎌지는 등의 쇠퇴를 마주하는 노인들의 태도와 노화의 과정이 은유적인 형태와 움직임으로 작품에 녹아 있다.
작가의 시선을 통해 형상화된 느린 시간과 늙은 신체의 면모들은 노인 환자뿐만 아니라 한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한 공감의 정서를 자아낸다.
/방초아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