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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우리는 선감학원 친구(원생)들이 부랑아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어요. 

선감도 토박이 최병호(67)씨는 1963년 5월 선감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김영배(68)씨를 처음 만났다. 영배씨는 당시 3학년으로, 선후배 사이였지만 병호씨는 영배씨를 수업도 같이 듣고 축구도 같이 하는 '친구'로 기억했다.


어린 시절이었던 만큼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서로를 불렀는데, 그때 영배씨의 별명은 '양돼지'였다고 떠올렸다. 퉁퉁하게 생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수용생과 같은 학교 다닌 토박이들, 친구들 고통스러운 경험 기억
"부모 찾아와 데려가기도" "치료 받지 못해 죽고, 탈출하다 죽어"
 

영배씨는 1963년 서울 충무로에 있는 큰누나 집으로 가다 경찰에 붙잡혀 선감학원에 끌려왔다. 그런 영배씨가 부랑아가 아니었다는 건 병호씨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병호씨뿐 아니라 선감도 주민들 대부분 선감학원 원생들이 부랑아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병호씨는 "같이 학교 다녔던 친구들은 그런 상황을 더 잘 알았다. 학교로 부모가 찾아와서 데려가는 애(원생)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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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밥을 먹고 공을 차던 죽마고우여도 병호씨와 윤기씨는 가족의 보살핌을 받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영배씨와 춘근씨는 가족을 빼앗긴 선감학원 원생이었다. 그 차이가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사진은 과거 선감국민학교 학생들 모습. /경기도교육정보기록원
 

선감도에서 나고 자란 신윤기(76)씨도 선감학원 피해자인 김춘근(73)씨의 친구다. 춘근씨는 1959년 11살 나이에 하인천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다 경찰에 붙잡혀 선감학원에 보내졌다. 윤기씨는 "춘근이가 부랑아가 아니라는 건 그때도 알고 있었다"며 "나중에 춘근이 아이를 우리 아내가 봐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선감국민학교 동창이다.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고 공을 차던 죽마고우다. 하지만 병호씨와 윤기씨는 가족의 보살핌을 받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영배씨와 춘근씨는 가족을 빼앗긴 선감학원 원생이었다. 그 차이가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친구들은 선감학원 원생이었던 친구들의 고통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춘근씨의 친구인 윤기씨는 "국민학교 4~5학년 시절, 그때 원생들에게 깎지도 않은 통밀로 밥을 지어 먹였다. 그걸 먹으면 소화가 안 되니까 그냥 다 변으로 나왔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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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선감학원 원생이었던 친구들의 고통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춘근씨의 친구인 윤기씨는 "국민학교 4~5학년 시절, 그때 원생들에게 깎지도 않은 통밀로 밥을 지어 먹였다. 그걸 먹으면 소화가 안 되니까 그냥 다 변으로 나왔다"고 떠올렸다. 사진은 과거 선감국민학교 학생들 모습. /경기도교육정보기록원

선감학원에서의 폭력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윤기씨는 "군대처럼 선후배 문화가 강하다 보니까 그런 폭력이 있었다. 좀 나쁜 선배들이 후배가 잘못하면 낫 뒷부분으로 등 부위를 때렸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선감학원에 의료시설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해 죽고 탈출했다 익사한 친구(원생)들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병호씨는 "옛날엔 섬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의료 시설이 낙후돼 피부병 같이 질병으로 죽은 애들이 있었다"고 했고 윤기씨는 "부모와 형제가 보고 싶어서 탈출하려는 애들이 많았다. 여름에 어섬쪽 방면 바다로 애들이 헤엄쳐 도망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눈으로 보면 가까워도 실제 수영해보면 엄청 거리가 멀다. 그래서 바다에서 익사해서 떠내려온 애들이 많았다"며 "그렇게 탈출해도 대부도나 어섬에서 머슴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 관련기사 3면([선감학원 특별기획 PART3·(2)] "일단 붙잡으면 선감학원으로"… 현장 지침에 복지는 없었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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