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16년에 발간된 ‘화성궐리지’에 첫 등장
문화 꽃피우며 보통의 정서 자란 것 변함 없어
인근에 위치한 대형마트 자리는 원래 화성군청
시장 일부는 교육청이 위치할 정도로 ‘번화가’
인류가 아주 오랫동안 지금까지 잘 지켜온 ‘유산’들이 있습니다. 그건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문화재일 수도 있고 우리 정신세계에 뿌리박혀 꾸준히 계승하고 발전시켜온 사회의 전통과 문화일 수도 있죠. 영어로 ‘헤리티지(Heritage)’라 표현하는데, 단순히 과거에 멈춰 현재엔 사장된 것을 의미하지 않고, 지금도 우리 삶 속에서 살아숨쉬는 고유한 가치를 반드시 내재한 무엇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헤리티지가 살아있는 것을 찾은 일은, 눈 깜빡할 사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 시대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레트로K 시즌 2의 주제를 ‘보통의 역사’로 구상한 건 시대는 변하지만 그때마다 시대를 살아냈던 보통의 우리가 지켜온 헤리티지를 기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찾다보니, 우리 삶의 헤리티지를 가장 많이 간직한 장소는 ‘시장’이었습니다. 어느 시대건,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꼭 ‘장’이 섰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큰 장이 되기 마련이었죠. 비록 현대에 들어서며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형마트가 생겨났고 온라인이 또 상거래의 상당부분을 잠식하면서 시장은 예전의 위상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치열하게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레트로K 시즌2의 마지막 장소는 가장 오래됐지만, 가장 젊은 시장을 찾아 떠나 볼 생각입니다. 인구 25만여명, 대도시 틈바구니 속 작은 도시지만 교통의 요충지인 덕에 예부터 사람이 모여드는 중심지 ‘오산’의 ‘오색시장’ 입니다.
문헌에 따르면 1792년 정조 16년에 발간된 ‘화성궐리지’에 오색시장이 처음 등장합니다. 그때와 지금은 여러가지 면에서 형태가 매우 달랐겠지만, 서민들이 필요에 의해 모였고 문화를 꽃피우며 보통의 정서가 자란 것은 변함이 없지요.

김주현 오색시장 상인회장은 그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산에서 유년을 보냈고, 그의 어머니가 오색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던 일이 어젯밤 일처럼 생생합니다. “제가 오산 성호초등학교 77기 졸업생인데, 성호초 역사가 125년 쯤 됐을 겁니다. 보통 도시가 생겨나거나, 발전하면 역사가 오래된 학교들이 위치를 옮기기 마련인데, 성호초는 그 자리 그대로에요. 그만큼 이 곳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중심지였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시장 위치는 지금 자리는 아니에요. 오산천 인근, 지금의 오산복합문화체육센터가 있던 자리였는데, 1986년 아시안게임 때 정부에서 근린생활시설을 늘리면서 상가건물들이 생겨나고 자연스럽게 시장 상권이 지금의 자리로 이동을 한거죠.”
김주현 상인회장이 회상하는 어린 시절엔 화성군 오산읍이었습니다. 지금의 오색시장 인근에 위치한 대형마트 자리는 원래 화성군청이었고 오색시장 일부는 화성군 교육청이 자리했었다고 하니, 화성군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틀림없지요. 이 근방서 장날에 “읍내 다녀온다”는 말을 하면 그건 필히 오산에 다녀온다는 말이었으니까요. 오산이 그때나 지금이나 유동인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건 ‘교통의 요충지’인 덕입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목, 1번국도가 지나가는 가장 가까운 도심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피란민이 1번국도 주변에 터전을 잡았은 것도 어쩌면 필연적이지요. 여기에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80년대와 경제 호황을 이루며 현금 융통이 가장 활발했던 90년대에 서민들이 마음놓고 돈 쓸 수 있는 도심 속 시장이 바로 오색시장이었죠.
“그땐 오산 주변 지역에 택지개발이 지금처럼 되질 않아서 화성 발안에서도 오고 수원 영통에서도 왔어요. 멀게는 용인 신갈이랑 안성, 송탄에서도 많이들 왔어요. 그 시절엔 주로 기차랑 버스가 주요 대중교통수단인데 옛날부터 오산역이 있었고 주변 지역의 대부분 시내·시외 버스가 오산을 관통해서 가기 때문에 많이 이용을 했죠.”

무엇보다 오색시장이 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없는 게 없는’, 대표적인 소매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대형마트가 없던 시절, 오색시장에만 가면 모든 걸 구할 수 있는 서민들의 대형마트였죠. “원래 시장들이 특산품, 또는 특별히 많이 취급하는 주력 품목들이 있거나 도매 위주로 운영되기 마련인데, 오색시장은 특산품이 없고 소매를 주로 취급하는 게 특징이었죠. 접근성도 좋은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걸 구할 수 있으니 소매시장으로는 아마 지금도 전국 1등일거에요.”
흐르는 세월을 누구도 막지 못하듯, 시장도 세월 앞에 장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시장들이 세월 앞에 소멸되거나 겨우 명맥만 잇는 이유이기도 하죠. 오색시장은 달랐습니다. 서민들의 생활을 책임지던 전성기를 지나 대형 자본의 기세에 밀려 좌절하고, 온라인 마켓의 속도에 뒤떨어지며 위기를 겪기도 했죠. 하지만 오색시장 상인들은 요동치는 시대의 물결에 어디 한번 온 몸을 던져보자는 마음으로 변화를 감행했습니다. 그렇게 물꼬를 튼 것이 벌써 올해로 12회를 맞는 ‘야맥축제’입니다. 오산은 잘 몰라도 오색시장 야맥축제는 아는 MZ들이 온오프라인에 넘쳐나니, 이만하면 시대의 물결에 잘 올라탄 셈입니다.
요동치는 시대 물결에 변화 감행한 상인들
올해로 12회 맞는 ‘야맥축제’ MZ세대 인기
전통시장을 ‘문화콘텐츠’ 소비… 예측 통해

“오래된 시장이기에 시대의 변화에 흔들리고 위기를 겪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상인들이 앞선 생각이었는데, 시장이라는 장소가 문화콘텐츠로 변화해야 하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문화관광형 사업을 공모했어요. 사실 전통시장들이 원래의 관성대로 하려고 하지, 어떤 콘텐츠를 만들기가 어렵거든요. 우리는 도심 속에 있는 전통시장이니까 젊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수제맥주’를 생각했어요. 보통 재래시장이라 하면 막걸리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도발적이지만, 자칫 ‘폭망’할 수 있는 실험이었습니다. 성공적인 실험을 위해 상인들은 생각보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축제를 구상해나갔습니다.

“처음 야맥축제를 한 장소는 시장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적은, 그니까 새로운 유입이 적은 골목이에요. 주로 의류나 건어물, 농업 부자재, 식당 등 목적성이 분명한 상점들이 있는 곳이에요. 그걸 살 목적이 있는 사람만 들어오는. 게다가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품목들은 어디서든 대체가 가능해졌죠. 하지만 수십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은 있는, 어쩌면 ‘진짜 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활성화를 위해 그 골목 하나에 축제를 시작했어요. 그때 수제맥주 업체(브루어리) 8팀이 참여했는데, 사실 우리도 반신반의했죠. 그런데 어디서들 알고 오는지 젊은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이더니 꽤 성황리에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그렇게 전국에 수많은 수제맥주 축제 중에 가장 손꼽히는 축제가 됐습니다. 축제기간에 시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매년 수만명에 달해요. 이제는 참여하고 싶은 브루어리들이 많아져서 선착순으로만 받아요. 올해는 25팀 받았는데, 이틀만에 신청이 마감됐습니다.”
처음엔 의구심을 갖던 시장 상인들도 이제는 축제시즌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서서 상인회를 돕는다고 합니다. 보통 야맥축제가 열리는 시기인 6월은 시장으로 치면 비수기입니다. 가정의달(5월)에 큰 소비를 한 서민들이 지갑을 닫는 시기거든요. 오색시장은 전국 전통시장 누구도 갖지 못한 ‘시장 축제 브랜드’를 구축해 비수기를 이겨냅니다. 이쯤되면 오색시장 상인회가 얼마나 치밀하게 전략을 구사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성공 아래에는 똘똘 뭉친 상인들의 마음이 있습니다. 상인회가 오롯이 야맥축제를 기획에서 설치, 운영까지 다 해낸 지난해엔 축제가 끝난 후 근 2주간 상인회 사무실에 삼계탕 끓일 신선한 닭을 가져다주고, 점심 거르지 말라며 음식을 잔뜩 해서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수고로움을 귀히 여기고 보답하는 보통 이웃들의 정입니다.

전통시장이 ‘문화콘텐츠’로 소비될 것이라는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뎌 온 오색시장의 내공은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상인들의 지혜였습니다. 전통시장을 문화로 소비하는 MZ들에게 오색시장은 가장 핫한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젊음이 다시 유입되며 시장이 영속할 수 있는 길을 찾으니, 상인들도 ‘2세대’로 상당부분 교체되며 변화에 더 유연해졌고 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김주현 상인회장은 오색시장에서 가장 먼저 2세대 가업을 물려받았죠.

“2000년대 초반 제가 어머니 가게에서 함께 일하며 물려받을 때만 해도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보던 어머니 또래의 삼촌·이모들이었어요. 지금은 오래된 가게들을 중심으로 2세대 경영이 많이 늘었어요. 부모세대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접목하는 거죠. 손님도 젊어지고 사장도 젊어지니, 새롭게 유입되는 젊은 상인들도 늘었습니다. 판로도 다양해진 건 물론이고, 물건을 전시하는 방법부터 손님을 응대하는 서비스도 유연해졌죠. 변화가 올 때마다 잘 맞춰 변해왔고, 이제는 오색시장 자체가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오색시장은 여전히 전통시장입니다. 고물가 시대 서민들이 작은 지갑을 가지고도 기댈 수 있는, 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또 한편으론 눈만 뜨면 변하는 현대사회와도 이물감없이 잘 녹아들었죠. 보통사람들이 간직한 고유의 정서를 계승하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잘 어울려 지금도 너무나 잘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헤리티지’라 부르고 싶습니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헤리티지 말입니다.
*그동안 레트로K 보통의 역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