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의 한자 고어는 법(灋)이다. 灋은 水(물 수), 廌(해태 치), 去(갈 거)의 합자로,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가려 불의를 뿔로 치받는 상상의 동물이다. 해태가 들어간 법(灋)엔 죄에 무자비했던 고대의 법의식이 담겨있다. 동해보복 원칙의 함무라비법은 법(灋)이 어울린다. 해태가 빠진 법(法)은 옐리네크가 정의한 ‘도덕률의 최소한’이라는 근대적 법인식에 가깝고 눈물을 흘린다. 2021년 수원고법은 구운 달걀 한 판을 훔쳐 1심에서 징역 1년을 받은 피고인을 징역 3개월로 감형했다. 생계형 범죄에 대한 눈물겨운 선처였다. 법의 정의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최대의 연민으로 도드라진다.

이런 법이 권력의 손에 넘어가면 최악의 흉기가 된다. 법을 장악한 권력은 해태의 뿔로 사회를 농단하고 구성원들을 찌르고 벤다. 역사에 등장한 모든 전체주의 독재들도 법의 이름으로 경멸적인 사건들을 자행했다. 나치는 뉘른베르크법으로 유대인을 학살했고, 김정은은 북한 법으로 고모부 장성택을 고사총탄으로 사형했다.

민주주의 국가는 법이 권력과 분립한다. 무도하고 불법적인 권력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때 법(法)이 법(灋)으로 변신해 해태의 뿔로 들이받아 국민의 주권을 수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다행히 민주주의 국가인 덕분에 위헌 계엄을 자행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판결로 파면했고, 내란죄로 법정에 세웠다.

대법원이 민주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에 선거법위반 상고심에서 유죄취지 파기환송을 판결했다. 민주당은 대법원을 사법살인의 원흉, 쿠데타 세력으로 몰았다. 한 달 후 보복을 예고한 의원도 있었다. 민주국가 최고법원을 위헌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격하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7일 파기환송심 공판을 대선 후로 미뤘다. 민주당의 역정은 계속된다. 대법원장 청문회를 의결했다.

어리석은 윤석열이 아니었으면 이 후보는 대법원 파기환송을 막을 수 없었을 테고 2027년 대선 출마가 막힌 채 4개 재판 출석에 여념이 없었을 테다. 조기 대선, 압도적인 1위 지지율, 지리멸렬한 보수당. 천우신조 말고는 설명이 힘들다. 법도 국민 선택을 외면하기 힘들고, 민주당은 당선자를 지킬 입법권을 장악한 마당이다. 이쯤에서 대법원을 놓아주어야 한다. 과욕으로 해태의 뿔을 뽑으려다 천우신조의 기운을 거스를 이유가 무언가 싶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