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 추천 ‘어른 김장하’ 다큐봐

선행도 권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

인천 송도 바이오대로 주변 산책길

3개의 기념비 석물이 눈에 들어와

지역녹화 치적 기념 어른답지 않아

인천 송도 6호 완충녹지 내 숲 조성 기념비석. /전진삼 건축평론가 제공
인천 송도 6호 완충녹지 내 숲 조성 기념비석. /전진삼 건축평론가 제공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이번 주 초반은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이 한 날이었던 까닭에 대체공휴일 하루가 더해져 5월 초 연휴가 길었다. 그리고 오늘은 어버이날. 누군가에겐 이번 한 주가 정성껏 섬겨야할 이들로 인해 마냥 편한 날은 아니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한 익명의 그들에게 위로를! 세대불문하고 서로가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으면 좋을 시간이다.

최근 집사람의 추천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다. ‘어른 김장하’. ‘어른’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다큐가 주는 무게감과 선입견 때문에 반신반의하며 시청하다가 점차 화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다큐는 경남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한평생 나눔과 선행을 베풀어 오면서 줄곧 자신의 존재는 지워온 인물, 김장하 선생님의 삶을 추적하고 있었다. 1944년생인 그 분은 19세 되던 해에 한약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1963년에 한약방 문을 열고 2022년 5월31일 영업을 종료하기까지 꼬박 60년을 한길을 걸어왔다. 평생 자가용 대신 걷는 것을 생활화하며 젊은 시절부터 벌어들인 돈을 틈틈이 지역사회의 발전과 후진들의 공부에 아낌없이 후원해온 목록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다큐의 후반부. 김장하 선생님은 장학금을 받고 살았지만 여보란듯 특별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한 후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겁니다.”

선행도 권력이 될 수 있다. 이는 김장하 선생님이 현역을 마감하는 끝물에서 선생의 자취를 추적해 들어온 전직 언론인 김주완 기자와 김현지 감독의 성심과 끈질김에 대한 답례로 마지못해 자신의 삶을 드러내기까지 그 분의 주변인들에서만 회자되었던 선행이 세상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던 이유다.

혹한의 여파가 여전했던 지난 3월, 여느 날처럼 맨발걷기를 하러 집을 나섰다가 전날 눈비에 얼어붙은 땅이 날을 세우고 있는 터라 그날은 그냥 신발을 신은 채 1시간 코스의 동네공원 한 바퀴를 걷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

인천 송도 바이오대로 주변 6호 완충녹지에 들어서서 걷는데 200m가 채 안 되는 산책길에 3개의 기념비 석물이 연이어 눈에 들어왔다. ‘가족사랑 연수사랑 숲’ 비명을 담은 숲 조성 기념비석이었다. 전면엔 구청장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고, 후면엔 참여한 주민들의 이름이 작은 글씨로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50~70m 간격을 두고 세운 3개의 기념비석 전면은 동일한 비명이, 후면엔 구역별 참여 주민의 이름을 새겼다.

지역의 녹화사업을 위해 주민들과 함께 열심인 구청장의 노고가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그런데 치적을 기념하는 태도가 참으로 어른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번 양보하여 1개의 숲 조성 기념비석으로도 족했고, 구청장 이름을 후면에 새긴 작은 글씨의 주민들 이름에 끼어 새겨놓았다면 그나마 보기에 짠했을 것을.

추신: 집 근처 햇무리공원에도 7년 전 봄날에 세운 동 구청장 명의의 같은 유형의 기념비석이 있다. 아, 존재의 가벼움이여.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