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기, 짧아진 가시거리로 인해

배의 좌초·좌주 등 각종 사고 발생

기상청, 5월부터 서해5도 인근에

‘어장 특화 안개정보’ 시범 제공

바다 위의 불안·불편 해소 바라

장동언 기상청장
장동언 기상청장

‘광풍이 일어나며 어룡이 싸우난 듯 대천 바다 한가운데 닻 잃고 노 잃고 용층줄 끊어져 안개 뒤섞어 젖어진 날 갈길언 천리만리 남고… 천지 적막헌디’.

심청이 탄 배가 인당수에 도달해 제물로 바쳐지기 전 바다의 상태를 묘사한 ‘심청가’의 한 소절이다. 심청은 어째서 바다에 자신의 몸을 던져야만 했으며, 많은 바다 중 왜 하필 인당수였을까.

인당수는 북한 황해도 장산곶과 우리나라 최북서 끝 섬 백령도 사이의 바다다. 과거 황해도에서 중국으로 오가던 상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역 루트였지만, 해상 날씨는 녹록지 않았다. 겨울엔 대륙에서 북서풍이 강하게 불고 파도가 높게 일어 위험했고, 봄부터는 넓은 범위에서 수일에 걸쳐 짙은 안개가 껴 방향을 잃기 일쑤였다. 또 늦여름과 가을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수많은 상인과 교역 물품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이처럼 사계절 내내 안심할 수 없는 바닷길이었기에 과거 사람들은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바다를 향해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드렸을 것이고, 안타깝지만 인신 공양도 불안을 내려놓기 위한 최선의 노력 중 하나였을 것이다.

지금은 교역을 위한 선박이 대형화되고 장비도 고도화돼 높은 풍랑과 짙은 안개에도 안전한 항해가 가능하지만, 조업 어선이나 레저 활동을 위한 낚싯배의 경우에는 대부분 중소형이므로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 다행히 해상에 강한 바람이나 높은 파도로 위험 상황이 예상되면 기상청이 풍랑특보를 발표하고 해양경찰청은 출항 어선을 통제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만, 바다 안개가 짙게 끼는 경우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고의 위험이 크다.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짙은 바다 안개가 2~3일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 이 시기를 농무기라 한다. 서해중부 해상 대부분의 중소형 어선은 백령도에서 연평도에 이르는 서해5도 어장에서 조업 활동을 하는데, 농무기에는 짙은 안개로 인해 조업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각종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짧아진 가시거리로 어선 간의 충돌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연안에서는 갯바위나 모래가 쌓인 곳 등의 지형지물이 잘 구분되지 않아 배가 좌초·좌주되는 일도 잦다. 특히 서해5도 어장은 맑은 날엔 북한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데, 어선 고장이나 GPS 오류 등 예기치 못한 상황 발생 시 북방한계선(NLL)을 넘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에도 노출돼 있다.

한편 바다 안개는 고기압과 저기압의 위치, 바람의 방향에 따라 좁은 해역에 집중돼 나타나는 경우도 빈번하다. 최근 5년간의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서해5도 어장 중 전 구역에 안개가 낀 경우는 56%로 안개 발생일 전체의 절반 정도였고, 나머지 44%는 백령도 인근 혹은 연평도 인근 등에 국지적 안개로 발생했다.

출항 전 어느 어장 구역에 안개가 많이 낄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야 확보가 어려운 안개 구역을 미리 파악해 조업 구역과 일정을 조정할 수 있어 안정적인 조업이 가능하다. 안전한 어장 구역으로 이동하는 데 드는 유류비를 절감해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등 부가적 이익도 상당할 것이다. 이에 수도권기상청은 5월부터 바다 안개 발생이 가장 잦은 서해5도 인근 어장에 대해 ‘어장 특화 안개정보’를 시범 제공한다. 출항 전날 미리 안개 예상 구역을 알 수 있어, 어민과 낚시객들은 안전을 지키고 바다 안개로 인한 손실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인간의 희생이나 노력으로 파도를 잠재우거나 안개를 걷을 수 없음을 안다. 자연 현상인 바다 안개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안개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심청의 효심이 심봉사의 눈을 밝혀 주었던 것처럼, 국민이 보다 안전하게 해상 활동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기상청의 ‘어장 특화 안개정보’가 바다 위의 하얀 어둠으로 인한 불안과 불편을 해소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장동언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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