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와 무관… 과도한 학습 부담
실제 소통 능력 사이에 괴리감도
공단측 “향후 직무별 고도화 논의”

이주노동자의 취업비자 발급을 위한 ‘EPS-TOPIK(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이 11년 만에 전면 개편되고 정식 교재가 처음으로 만들어졌지만, 새로운 시험이 출제되기도 전부터 실효성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중소기업들은 직무와 무관한 과도한 학습 부담, 실제 의사소통과의 괴리감 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산업인력공단(이하 인력공단)은 고용허가제(E-9 비자) 대상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어 시험인 EPS-TOPIK을 11년 만에 전면 개정했다. 당시 인력공단 측은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던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실제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업무 용어들을 추출, 직무와 한국어능력시험 간 연계성을 강화해 올해부터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된 시험 교재는 일상생활과 직무 관련 내용을 각각 다루는 2개 파트로 구성돼 있다. 파트 1에선 날짜·요일·길 찾기·물건 구입·우체국 및 은행 업무 등에 쓰이는 일상생활 한국어, 파트 2에선 작업장 내 안전 규칙·근로기준법·산업 재해 등과 관련된 직무 관련 내용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 같은 개정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선 벌써부터 실질적인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파트 2 내에 직무 관련 범위가 넓어 불필요한 부분까지 학습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파트 2에 소개된 직무 종류는 기계·금속 가공부터 건축 및 토목·농작물 재배·동물 사육·어업 등 16가지로 사실상 이주노동자들이 투입되는 산업 전방위에 걸쳐 있다. 시험을 보기 위해선 이 모든 부분을 배워야 하는 셈인데 통상 입국 전 직무가 이미 지정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불필요한 학습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016년 네팔에서 귀화한 유동준 의정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통역사는 “한국 현장에선 한국어능력시험에서 공부한 것이 크게 쓸모없다”며 “학업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근무하는 업종별로 집중하면 더 효율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어능력시험의 점수가 높아서 고용했더니 점수와 실제 한국어 소통 능력 사이에 괴리감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25년 고용허가제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언어소통 문제는 전체 불만족 사유 중 61.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에 대해 인력공단은 “아직 개정된 교재를 바탕으로 시험이 출제되진 않았다”며 “향후 출제 방향성을 직무별로 고도화할지 여부 등은 현재까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