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실학자인 김정희가 추구했던 문자 예술의 가치를 조명한 ‘추사, 다시’전이 남양주 실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실학박물관은 정통한 서예가로 이름을 알린 추사와 그의 예술적 사유를 공명한 동시대 작가 다섯명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대중에게 익숙한 일명 ‘추사체’는 정형화되지 않은 특성을 지녔는데, 이는 예술적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추사의 정신을 오롯이 드러낸다.
전시는 2부로 나뉜다.

1부에는 추사의 주요작을 소개한다. 그중 눈여겨볼만한 작품은 추사 예술의 정수로 불리는 국보 ‘세한도’다. 14.7m의 대작인 세한도는 추운 겨울 척박한 유배지에서도 변치않는 의리를 보여준 제자 이상적에게 추사가 선물한 그림이다. 초옥과 소나무, 잣나무가 전부이지만 간결한 구도가 오히려 힘있는 필치를 돋보이게 하는 듯 하다.


표현적인 요소가 도드라지는 동시대 작가과 추사의 작품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전시 총괄 기획을 맡은 석재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추사의 주요작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필요에 따라 병치하거나 멀리 떨어뜨려 각 작품의 기획 의도를 극대화해 관람객에게 전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2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 중 강병인이 구현해낸 ‘늘 푸르른 솔’은 세한도에 담긴 선비의 지조와 기개를 재구성했다. 한글 ‘솔’의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 하늘(ㅅ), 사람(ㅗ), 땅(ㄹ) 등의 의미를 부여한 이 작품에선 세한도의 제작 배경과 추사의 정신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추사의 작품 ‘사야(史野)’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한권의 책으로 풀어낸 함지은의 ‘사야’에도 눈길이 간다. 추사의 ‘사야’는 논어 ‘옹야장’에 등장하는 ‘내용이 겉모양을 능가하면 투박하고, 겉모양이 내용을 능가하면 화려하다’라는 구절을 함축한 것으로, 올곧은 군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함지은이 표현해낸 ‘사야’는 구조화된 현대 활자의 전형으로, 특별한 기교없이도 예스럽고 소박한 멋을 담아낸 추사의 작품과 같은 문자를 표방하지만 다소 다른 매력을 지닌다.
이밖에도 DDBBMM, 양장점, 김현진 등 내로라하는 시각 디자이너들의 작품은 중국의 옛 비석, 문인화, 글씨첩 등을 섭렵한 추사체의 특징을 저마다의 다채로운 필법으로 구현한다.
김필국 실학박물관 관장은 “실학이라는 전통 문화유산을 현대적인 디자인 언어로 확장하기 위한 전시”라며 “독창적인 서예가로 명성을 떨친 추사의 서체를 주목했고 캘리그라피, 타이포그래피를 엮어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26일까지.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