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대통령 선거는 이래저래 기록할 게 많아졌다. 점잖게 말해 조기 대선이지 이번 선거는 그야말로 비상식적으로 태동한 선거다. 많은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을 ‘실패한 친위 쿠데타’라고 한다. 이번 선거는 그 때문에 치러진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도부는 난데없이 후보자 등록을 코앞에 두고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김문수 후보를 무소속인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교체하려고 했다. 사상 초유의 후보 강제 교체 시도를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쿠데타로 규정했다. 지도부의 그 시도는 예상을 뒤엎고 당원 투표에서 부결되었다. 쿠데타에 실패한 거다. 천신만고 끝에 후보 지위를 되찾고 당무 우선권을 행사하게 된 김 후보는 젊은 비대위원장을 인선하는 등 분위기 쇄신책으로 선거운동을 출발했다.
역대 대통령 선거 중 부정선거의 끝판왕은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다. 이승만 대통령과 인천 강화 출신의 조봉암 전 농림부 장관이 대결했다. 분위기가 조봉암 후보 쪽으로 흐르자 희대의 표 바꿔치기 수법이 등장했다. 조봉암 표 묶음의 앞뒤에 이승만 표를 붙여 그 묶음이 이승만 표인 것처럼 눈속임했다. 이승만은 그렇게 또다시 대통령에 등극할 수 있었다.
1987년 대선은 내부 분열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 선거였다. 당시 대학교 1학년이던 기자에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 구호가 있다. 독재타도나 호헌철폐보다도 훨씬 강력한, ‘○○○의 각을 뜨자’라는 구호. ‘각(脚)을 뜨자’는 표현은 잡은 짐승의 팔다리를 잘라 해체할 때 쓰는 험악한 말이다. 당시 군부독재 정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그랬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 간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는 바람에 순수한 의미의 정권 교체를 이루지 못했다.
그동안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보면 선거마다의 상징적 표현이 있다. 1956년 대선은 ‘부정선거’로 대표할 수 있겠고, 박정희 정권 시기 선거에는 ‘막걸리 선거’니 ‘고무신 선거’니 하는 말들이 따라다녔다. 선거인단을 체육관에 모아 놓고 치르는 ‘체육관 선거’도 오랫동안 진행돼왔다. 1987년 선거는 민주적 여망과는 동떨어진 ‘분열’이 상징어가 될 수 있다. 정상적이라면 2년 뒤에나 있어야 할 이번 대선의 상징어는 무엇이 될까. 여러 말들이 다투겠지만 그 어느 것도 감히 ‘쿠데타’를 넘보지는 못할 듯하다.
/정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