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 운영비 감당, 시설 유지·관리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워
제도적 보호와 행정적 지원도 열악
당장 이익 없어도 존재 이유는 분명
단지 전시물이 놓인 공간이 아니다

가정의 달 5월이면 자연스레 부모님과 스승님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분들의 삶과 가르침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라.” 그 분들은 한결 같이 나에게 그것을 말씀하셨다.
그 가르침은 내 안에 소리 없이 스며들어 박물관이란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게 했다.
지역의 문화 수준을 높이고 자연의 역사, 생명의 경이로움을 나누고 싶다는 열망으로 설립한 우석헌자연사박물관. 그렇게 한 개인의 작은 열망으로 시작된 박물관은 어느덧 22년의 시간을 기록하며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인이 박물관을 설립하여 운영한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고 고통스럽다.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매년 수억원의 운영비를 감당하며 수집된 유물 보존 및 전시, 연구 및 교육프로그램 개발 운영, 관람 환경 유지 및 시설관리 등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나아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하다. 한마디로 유지관리에 필요한 고정지출 예산이 없기 때문에 상상 이상의 고통이 동반된다. 어쩌면 사립박물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족이 운영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듯하다. 누군가는 아직도 사립박물관을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기업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박물관에 대한 제도적 보호와 행정적 지원 또한 너무 열악하다. 누군가는 “박물관 운영은 가성비가 맞지 않다”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화는 효율이 아니라 지속과 공감의 영역이기 때문에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다 해도 존재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박물관에 수집·보존되어 있는 자연과 인류의 흔적들은 미래에 대한 중요한 자원으로 다양한 가치를 생성하며 대중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를 품고 있는 박물관은 단지 필요하다 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기꺼이 감당하고, 버텨내야만 지켜지는 것이다.
그런 강한 신념으로 묵묵히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소망은 단 한 가지.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때로는 불쑥불쑥 그간의 고단함과 회의가 한꺼번에 몰려 와 마음을 흔들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이제 이 힘든 길을 접어도 되는 것 아닐까.”
지금까지의 노고로 나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위안하며 이제 멈춰야 할 이유를 찾아 안주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박물관 구석구석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 꽃 피우는 즐거운 가족들, 주름진 손 꼭 잡고 다정하게 전시물 바라보며 행복해 하는 노부부의 모습, 그런 장면들이 내 안에 비집고 들어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나의 시간과 노력이 누군가의 소중한 순간으로 환원되는 것. 그것이 존속되어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박물관은 단지 전시물이 놓인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의 배움의 공간이자 가족의 추억이 깃드는 장소이며, 삶의 위로를 건네는 쉼터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 삶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세대가 어우러지고, 가족이 추억을 만들며, 공동체가 다시 연결되는 공간이 된다.
그런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박물관을 가꾼다. 전시물을 닦고, 잡초를 뽑고, 관람객을 맞이하며 또 하루를 값지게 채운다. 우석헌자연사박물관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다음 세대의 영감이 되며, 가족의 추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이 작은 실천이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내리라는 믿음으로.
가정의 달 5월, 운영의 어려움으로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품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다시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뚜벅뚜벅 이 길을 걷는다. 작고 고단한 걸음일지라도 반드시 미래를 향한 바른 길이라 믿으며. 고난의 길에 만날 또 다른 희망을 꿈꾸며 나아간다.
/한국희 우석헌자연사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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