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추사박물관 ‘추사를 품다’展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표’로 시작

살필수록 살아나는 추사의 예술혼

커다란 물음표로 시작하는 ‘추사를 품다’ 전시장 입구.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커다란 물음표로 시작하는 ‘추사를 품다’ 전시장 입구.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전시는 ‘물음표’로 시작한다.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서예가·예술가에게 던지는 질문이고, 이곳 과천에 던지는 물음이다. “우리에게 추사는 무엇인가?”

과천 추사박물관이 2025 추사 연합전의 일환으로 지난 10일부터 ‘추사를 품다’를 시작했다. 추사로부터 그의 제자를 거쳐 근현대 서예가들로 이어진 추사의 예술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다. 실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추사, 다시’전이 시대를 건너뛰어 추사의 시대와 현대의 해석을 비교해 살펴보는 전시라면, 추사박물관의 ‘추사를 품다’전은 그 사이의 시대를 면면히 흘려 현대까지 이어진 추사예술의 역사를 살펴보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소개하면서 추사박물관은 추사를 ‘서예사에서 가장 창조적인 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동안 추사의 대표작들에서 일부 엿봤으나 전체 면면을 살피지 못했던 창조성과 예술혼을 이번 전시에서 엿본다. 추사의 정신과 예술은 지인들과 주고받은 짧은 서찰에도, 작은 그림에도, 그의 제자들의 작품에도 온전히 녹아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며 받은 ‘물음표’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며, 작품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둘러봐야 할 전시다.

‘추사를 품다’ 전시는 추사의 작품 네 점부터 시작해 우봉과 소치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추사를 품다’ 전시는 추사의 작품 네 점부터 시작해 우봉과 소치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커다란 물음표를 만난 후 오른쪽으로 돌면 추사의 작품 네 점을 만난다. 첫 번째 작품은 추사가 소당 김석준에게 써준 부채글씨 ‘선면예서 한예일자(扇面隷書 漢隷一字)’다. ‘한예(漢隷·한나라 예서)의 한 글자가 해행(楷行·해서와 행서)의 열 글자를 당할만 한데….’라는 내용에서 한예에 대한 추사의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그만큼 공들여 쓴 추사의 예서 글씨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부채글씨 아래에는 추사가 제자 이당 조명호에게 보낸 답장이, 그 옆으로는 예산 추사고택 인근 병품바위에 새겨진 ‘시경(詩境)’ 탁본이 자리해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20년만에 일반에 공개된 ‘붓 천 자루, 벼루 열 개’ 편지 원본을 만난다. 추사가 과천시절에 친구 권돈인에게 보낸 이 서찰의 내용 중 ‘70년 동안 벼루 열 개를 갈아 없애고, 천 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다’에서는 평생 끊임없이 이어간 추사의 노력이 드러난다.

추사의 제자로 유명한 소치 허련의 작품 ‘팔폭산수병풍’.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추사의 제자로 유명한 소치 허련의 작품 ‘팔폭산수병풍’.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추사의 작품을 지나 등장하는 것은 당대의 서화가 우봉 조희룡과 소치 허련의 작품들이다. 추사의 묵란화풍을 받아안은 조희룡의 ‘묵란도’와 ‘묵죽도’, 추사의 제자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면서도 추사 글씨 보급에 힘써온 허련의 ‘팔폭산수병풍’과 ‘모란도’ 등이다. 특히 허련의 ‘팔폭산수병풍’은 화북 산수를 그린 위쪽 8장과 강남 산수를 그린 아래쪽 8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힘있고 거친 북쪽의 산수와 부드럽고 평온한 남쪽의 산수를 비교하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신헌의 아들 신정희가 우봉에게 보낸 칠언시 중 추사에 대한 깊은 애정이 표현된 ‘몽중일편청관산(夢中一片靑冠山, 꿈속에서도 한 조각 청관산이로다)’  부분.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신헌의 아들 신정희가 우봉에게 보낸 칠언시 중 추사에 대한 깊은 애정이 표현된 ‘몽중일편청관산(夢中一片靑冠山, 꿈속에서도 한 조각 청관산이로다)’ 부분.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소치의 작품을 본 후 뒤를 돌아보면 조선후기 무신 신헌이 남긴 서첩을 만난다. 신헌은 무신이었지만, 추사에게서 금석학과 서예를 배워 남다른 글씨를 남겼다. 그 옆으로 신헌의 아들 신정희가 우봉에게 보낸 칠언시가 길게 자리해 있다. 칠언시에서 눈여겨 볼 것은 ‘몽중일편청관산(夢中一片靑冠山, 꿈속에서도 한 조각 청관산이로다)’이라는 뒷부분이다. 청관산은 청계산과 관악산을 지칭하는데, 과천과 추사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드러난다.

일제시대 추사 연구 일인자로 꼽히는 무호 이한복의 작품 ‘계산무진(谿山無盡)’은 추사의 글씨를 임모(보고 옮겨 씀)한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힌다. 창조적이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형태와 배치에서 추사의 창조성을 엿볼 수 있다.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일제시대 추사 연구 일인자로 꼽히는 무호 이한복의 작품 ‘계산무진(谿山無盡)’은 추사의 글씨를 임모(보고 옮겨 씀)한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힌다. 창조적이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형태와 배치에서 추사의 창조성을 엿볼 수 있다.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허련의 ‘매화·소운 대련’ 옆으로 소우 강벽원의 ‘석란도 쌍폭’을 보고 나면,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무호 이한복의 ‘계산무진(谿山無盡)’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서예가이자 화가 이한복이 추사의 계산무진을 임서(글·그림을 따라서 쓰거나 그림)한 작품으로, 임서 작품 중 걸작으로 손꼽힌다. 절묘한 창작성이 엿보이는 글자의 모양, 한껏 위쪽으로 올려 써 아래 공간을 비우거나 글자 두개를 쌓아 묵직한 무게감을 준 예술적 배치가 감탄을 자아내면서 문득 추사의 원본을 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소전 손재형의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산해숭심’.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소전 손재형의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산해숭심’.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이어 매계 유병기의 ‘쾌설시청’과 소전 손재형의 ‘산해숭심’을 만난다. 손재형은 20세기 후반에 한 획을 그은 작가인데 우리에게는 ‘소전체’라는 독특한 서체로 알려져 있다. ‘산해숭심’은 손재형의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대표작 중 하나다.

검여 유희강의 작품 ‘제석파난권’(왼쪽)과 ‘완당정게’.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검여 유희강의 작품 ‘제석파난권’(왼쪽)과 ‘완당정게’.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이제 이번 전시의 또다른 하이라이트인 검여 유희강의 ‘완당정게’와 ‘제석파난권’을 만난다. 두 작품 역시 절묘한 글씨와 배치가 돋보이는데, 특히 한가운데 탑처럼 ‘南無阿彌陀佛 (나무아미타불)’ 글자를 쌓은 모습과 역시 한가운데 독특하게 공간을 비운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관우의 작품 ‘과지초당’과 추사박물관 앞에 자리한 ‘과지초당’. 추사 김정희는 말년 과천시절을 이곳 과지초당에서 보냈다.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이관우의 작품 ‘과지초당’과 추사박물관 앞에 자리한 ‘과지초당’. 추사 김정희는 말년 과천시절을 이곳 과지초당에서 보냈다.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전시의 후반부는 추사의 예술혼을 이어가거나 추사를 연구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여인숙 작가가 감물들인 광목천 바탕에 달밤 아래 석란을 그린 작품 ‘석란도’는 전시장 가운데에 걸려있다. 그 맞은편으로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장 화가 이관우의 ‘과지초당’과 ‘불이선란’이 강렬한 인상을 전해준다. 이관우의 두 작품은 추사박물관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데, 박물관 앞에 자리한 실제 과지초당과 박물관 외벽에 새겨진 불이선란이다.

이렇게 기획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입구에서 다시 ‘물음표’를 만난다. 들어가며 받은 물음표와 나올때 만나는 물음표는 의미가 다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관람객과 현재의 우리들, 그리고 추사박물관과 과천시에 던져지는 질문이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우리다.

추사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진행중인 2025 테마전 ‘돌에 새긴 추사 글씨’.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추사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진행중인 2025 테마전 ‘돌에 새긴 추사 글씨’. 2025.5.13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추사박물관에서는 ‘추사를 품다’와 함께 올해 테마전 ‘돌에 새긴 추사 글씨’도 진행중이다. 기획전시실 맞은편 세미나실에서 11월 말까지 이어지는데, 추사가 남긴 13점의 금석문과 추사 가문이 남긴 금석문 4점을 탁본으로 만날 수 있다. ‘선암사 백파율사비’ ‘김복규·김기종 효자정려비’ 등을 살펴본 후 금석문 탁본 체험 프로그램까지 참여하는 재미가 있다.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