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생 화양연화’ 수원 출발 동행취재
상인·주민 “경기도지사 때 잘했다” 회상
“대통령집무실·국회 세종 이전 앞당길것”
청주에선 충청형광역급행철도 CTX 꺼내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주말을 기해 충청과 호남에 공을 들였다.
선거운동 첫날 국립대전현충원과 충청권 선대위 출정식에 들렀던 그는 금요일인 16일 충청을 다시 찾아 천안·세종·청주·대전을 순회하며 맞춤형 공약을 천명하고, 이튿날에는 ‘민주화의 성지’ 광주와 ‘호남의 수부’ 전주에서 겸허하게 지지를 호소했다.
여정은 김문수 정치인생의 ‘화양연화’가 펼쳐졌던 수원에서 출발했다. 16일 아침 팔달문 인근 지동시장에 도착한 김 후보는 민선 5·6기 경기도지사 재임 기간 성과를 집중 부각했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 장모(여·63) 씨는 김 후보의 경기도지사 시절에 대해 “잘했었다. 아무 사고 없이 끝났잖느냐”며 “도지사 이미지보다도 ‘깨끗한 정치인’ 이미지가 워낙 강했다”며 “한덕수가 나오지 말고 대선 때까지 자리 지키는 게 나을 뻔했다. 밤중에 그게 뭐냐”고 말했다.
수원 토박이라고 밝힌 주민 이모(68·행궁동) 씨는 “어차피 이재명이 될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면서도 “잘하긴 잘했다”고 칭찬했다.
김문수 후보는 화성 동탄을 경유해 천안으로 향했다. 지지자들의 함성과 박수가 끊이지 않자 그는 손으로 브이자를 그려보이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 후보는 국내 유수의 기업을 저렴한 땅값과 각종 지원책으로 끌어올 수 있도록 천안아산지역에 국가산업단지를 많이 조성하겠다고 했다. 서해안권에 고속철도망을 확충하겠다고도 했다.

세종 국회의사당 부지로 이동한 김 후보는 대통령 집무실 건립을 포함한 국회 완전 이전을 기존 계획보다 3년 앞당긴 2029년에 마무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가인권위·금융위·국가교육위·원자력안전위·개인정보위원회 등 국가 5대 위원회까지 옮겨오겠다고 공언했다.
현장에 있던 국민의힘 세종시당위원장은 김 후보 방문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공약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으느정이거리서 아이 목마태워 도보 이동
국립5·18민주묘지서 박관현열사 묘 참배
눈물흘리며 박열사 가족 언급…주위 숙연
“전주올림픽 총력” 약속, 새만금서 마무리
청주에서는 청주공항과 오송·세종·대전을 연결하는 충청형 광역급행철도 ‘CTX’ 카드를 꺼냈다. 또 오창 바이오단지 연구예산 대폭 지원과 청주지역 중첩규제 해소를 약속했다.
중원 공략 첫날의 대미는 대전시민들이 장식했다. 성심당부띠끄 앞에 하차한 김 후보는 이름을 ‘태양이’라고 답한 어린아이를 번쩍 들어 목마 태운 채 유세장인 으느정이거리까지 수백미터를 걸어갔다. 으느정이거리에 운집한 지지자들은 굵은 빗줄기에도 이날 일정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큰절하며 유세를 시작한 김 후보는 대전을 세계적인 과학기술도시이자 창업중심도시로 키우겠다고 했다. 또 성심당을 몇 차례 언급하고, 전달받은 한화이글스 유니폼을 즉석에서 입는 퍼포먼스로 환호를 이끌었다.
17일 오전에는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김 후보는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와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운동을 하다 단식투쟁 끝에 숨진 박관현 열사의 묘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박관현 열사가 광주교도소에서 단식하던 방에서 내가 수감생활을 했다”며 “박관현 열사가 죽은 뒤에 내가 그방에 간 것이어서 마음이 쓰였다”고 돌이켰다. 이어 “박관현 열사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누님이 살아계신데 매년 오신다”며 눈물을 흘려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참배를 마친 김 후보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국민의힘 광주 현장선대위에 참석한 뒤 전주한옥마을 유세장으로 이동했다. 전주의 제지산업을 특별히 거론한 그는 하계올림픽 유치에 총력을 쏟고 새만금을 세계적인 산업·교육 자유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택시운전사 이력이 있는 김문수 후보는 전북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의 환영 속에 간담회를 마친 뒤 늦은 오후 새만금 현장 점검으로 중원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편, 김 후보의 부인 설난영 여사는 18일 민주영령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광주양림교회와 무등산 원효사를 찾았다. 전남 고흥 출신인 설 여사는 순천여고 졸업 후 상경해 노동운동을 하다 김 후보를 만나 결혼했다.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