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많고, 채우려는 마음들때도… 도자기만큼은 자연에 맡깁니다”
유약 없이 구워 단 하나뿐인 작품 탄생
제주대 동문 인연 도자 본향 여주 정착
주장 절충 통해 결과물 나오면 희열도
휴식·사색·치유 주제 대중 적극 소통
일상서 쓰일 수 있는 무유도자기 집중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도자기에서 어떻게 이런 색감과 질감이 나올 수 있을까?’
여주시 대신면에 위치한 도자기 스튜디오 ‘살래요’를 방문한 이들의 첫 반응이다. 제주에서 대학동기로 만난 도예가 부부 박병욱(45·오른쪽)·양수열(45) 작가는 13년째 여주도자기축제에 참여하며 ‘장작가마 무유소성’ 기법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살래’란 부엌 선반을 이르는 ‘살강’의 제주도 방언이다.
■ 불과 재가 빚어내는 자연의 마법 ‘무유소성’
일반적인 도자기가 유약을 발라 색과 질감을 내는 것과 달리 살래요의 작품들은 유약 없이 70시간 이상의 장작가마 소성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이들이 고집하는 무유소성은 장작을 태울 때 날리는 재가 기물에 묻어 자연스럽게 유약 효과를 내는 작업이다.
박 작가는 “장작가마 특성상 산화와 환원이 반복되고 나뭇재가 불규칙적으로 날리기 때문에 완성된 작품에서 불이 지나간 자국과 재가 녹아 흘러내린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듯 이들의 작품은 하나하나 다른 표정을 지닌다. 같은 모양의 도자기라도 불길이 닿은 방향에 따라 색감이 달라지고 날씨와 습도에 따라 결과물이 변화한다. 작가가 의도할 수 없는 자연의 흔적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기는 것이다.
양 작가도 “누군가 이 작품과 똑같은 색감을 원한다면 저희는 할 수 없어요. 그날의 불과 재, 날씨가 만들어낸 유일한 작품이니까요”라고 답한다.

■ 제주의 영감, 여주에서 꽃피우다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산업공예 도자전공)에서 만난 두 사람은 도자기에 대한 열정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제주도의 오름과 능선, 고요한 자연 풍경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지만 장작가마 소성을 위한 나무 수급과 판로 개척 등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2013년 도자기의 본향인 여주에 정착했다.
양 작가는 “제주도는 저희에게 사색을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섬이라 생각됩니다. 그곳에서 도자기를 처음 접했고 원시적인 자연이 주는 영감은 아직도 저희를 설레게 합니다”라고 말한다.
박 작가는 “사색의 공간이 제주도라면, 여주는 생각을 가다듬고 정리하고 표현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여주의 도예산업 육성 환경과 전시 판매의 이점, 무엇보다 장작가마 소성에 적합한 환경이 이들을 여주에 머물게 했다.
흥미롭게도 두 작가는 제주와 여주 사이에서 문화적 유사점도 발견했다. 이들은 “제주도가 바람, 여자, 돌 세 가지가 많다고 하잖아요. 왕후의 고장인 여주도 여성의 기운이 센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저희 작업실도 ‘바람골’이라 불릴 만큼 바람이 세고, 남한강이 흐르는 습한 환경이라 제주와 닮아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 다른 기법의 조화, ‘박수다관’의 탄생
두 작가의 협업은 서로 다른 작업 방식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박 작가는 주로 물레를 이용해 기물을 만들고 양 작가는 오로지 손 끝으로 흙을 꼬집어 기물을 만드는 핀칭 기법을 사용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협업 작품인 ‘박수다관’은 각자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지은 이름으로, 서로에게 박수를 치며 격려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양 작가가 핀칭기법으로 다관 몸통을 만들면, 박 작가는 그 형태에 가장 자연스러운 선을 찾아 물레로 뚜껑, 물주둥이, 손잡이 등을 완성한다.
박 작가는 “서로의 주장을 절충, 표현되고 완성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그런 과정들이 정리돼 쓰임이 있는 결과물이 나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가져다 줍니다”라고 말했다.
두 작가는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차 도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종종 의견 충돌을 겪지만 이런 과정이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부부관계도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 세대를 넘어 소통하는 도자예술
최근 열린 여주도자기축제에서 두 작가는 젊은 세대의 뜨거운 관심과 호응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에는 주로 도자기를 좋아하는 일부 마니아층에게 사랑받던 살래요의 작품이 이제는 20~30대 젊은 층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양 작가는 “올해 축제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세대의 변화였다. 해마다 젊은 구매자들의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특히 20~30대가 차 문화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이번에 선보인 차 도구는 어두운 흑토를 사용해 토기 특유의 질감을 살린 점이 특징이다. 시각적으로도 찻자리에 멋을 더해 많은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었고, 젊은 세대의 관심이 실제 구매로 연결된 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덧붙였다.
두 작가는 부부전시를 지속적으로 열며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전시 때마다 찻자리를 마련해 작품을 보러 온 이들과 차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눈다. 전시의 주제도 ‘휴식’, ‘사색’, ‘치유’ 등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것들로 구성한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여주, 제주, 울산 등 다양한 지역에서 부부 전시를 이어가며, 전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해 도자기의 실용성을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소통의 방식은 도자기를 보다 친근하게 느끼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문화를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와 예술의 발전은 향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자기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표현하려는 욕망과 그 욕심을 내려놓는 일의 반복입니다. 생각이 많아지고 채우려는 마음이 들 때, 도자기를 구워내는 일만큼은 자연에 맡깁니다. 장작가마를 고집하고 무유소성을 추구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서
두 작가는 앞으로도 무유도자기만을 고집할 계획이다. 많은 이들이 유약 없이도 다양한 색감과 질감, 유리질이 형성되는 무유도자기를 신기해 하지만 이들은 관상용이 아닌 생활 속에서 쓰일 수 있는 무유도자기를 계속 선보이고자 한다.
박 작가는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변치 않는 자연과 옛것에서 영감을 받아 도자 작업에 투영하고, 그것이 실제로 사용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기(器)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소통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불과 재의 예술을 손끝에 담아내는 도예가 부부의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주의 한 작업실에서 70시간의 기다림 끝에 세상에 태어나고 있다. 자연의 흔적을 그대로 담아낸 그들의 작품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치 않는 가치를 전한다.
■ 전시 약력
◆ 부부전
▲ 2019년 박병욱·양수열의 무유장작가마 동행展, 연갤러리 ▲ 2021년 결합展, 갤러리다운재초대전, 울산 ▲ 2022년 담-다, 공감展, 빈집예술공간#2 기획초대전, 여주
◆ 단체전
▲ 2016년 테이블 위로 떠난 여행展, 여주 생활도자관 ▲ 2021년 경기 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전 회복, 공간을 그리다展 ▲ 2023년 Fire & Ash Woodfire Exhibition, Gallery Lowe and Lee, 오스트레일리아
■ 박병욱 작가는?
▲ 2007년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 2010년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예학과 졸업 ▲ 前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문화조형디자인과 출강
■ 양수열 작가는?
▲ 2005년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도자공예 졸업

여주/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