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역교정사와 살펴본 ‘시각장애인 대선 공보물’

줄 나누기 등 점역 완성도 제각각

일부 ‘표·그림 설명 음성’ 잘 반영

내년 6월 지방선거땐 제공 미지수

시각장애인 점역교정사 김준영씨가 인천시 서구 큰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시각장애인 유권자에게 제공된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점자형 선거공보물과 USB 선거공보물을 살펴보고 있다. 2025.5.26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시각장애인 점역교정사 김준영씨가 인천시 서구 큰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시각장애인 유권자에게 제공된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점자형 선거공보물과 USB 선거공보물을 살펴보고 있다. 2025.5.26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각장애인 유권자에게 제공된 ‘점자형 선거공보’와 ‘이동저장장치(USB) 선거공보’는 비장애인용 선거공보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최근 인천 서구 큰솔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시각장애인 점역교정사 김준영(38)씨와 만나 대선 후보 6명의 선거공보를 살펴봤다.

■ ‘점자형 선거공보’ 보완할 점 보여

점자형 선거공보는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다. 대선 후보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시각장애인 유권자의 거주지로 배송되는 책자형 선거공보를 점자형 선거공보로 제작해 제공해야 한다.

흰 종이 위에 찍힌 점자를 손으로 해독하며 6개의 점자형 선거공보를 훑어본 김씨는 두 부류로 공보물을 나눴다. 하나는 양쪽 여백을 충분히 살려 점자를 정렬한 것, 다른 하나는 양쪽 여백이 좁고 빽빽하게 점자가 나열된 것이었다.

김씨는 “각 후보가 공보물을 맡기는 업체 등에 따라 점역의 완성도가 제각각”이라며 “문자를 점자로 바꾸는 점역 프로그램을 돌린 후 점자의 오와 열을 반듯하게 맞추고, 한 줄에 들어가는 글자 수를 제한해 줄 나누기를 하지 않으면 가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풀어쓰기를 원칙으로 하는 점자 특성상 점역 과정을 거치면 분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점역 과정에선 줄 나누기와 여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대선 후보들은 일반 선거공보에선 한 면에 정리된 인적사항, 재산사항·병역사항, 세금납부·체납실적 및 전과기록 등 ‘후보자정보공개자료’가 점역 과정을 거치며 6~7면까지 늘어났다.

■ “선거공보에도 ‘장애감수성’ 필요해”

각 후보가 제공한 USB에는 한글 문서 등 텍스트 파일 형태의 선거공보가 담겨 있다. 이 USB 선거공보는 텍스트 파일을 점역해 기기에 곧바로 점자를 출력하면서 음성을 함께 제공하는 ‘한소네’(점자정보단말기)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또 시각장애인 모드가 설정된 노트북에 연결해 음성으로 내용을 확인할 수도 있다.

김씨에게 USB를 노트북에 연결해달라고 했는데, 대선 후보들의 USB 6개는 비슷한 크기와 모양인데다가 겉면에 후보 이름이나 번호를 구분할 점자가 없어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에 불편해 보였다.

또 일반 선거공보의 문구만 그대로 옮겨 담은 것이 아닌 페이지 수, 표, 사진 설명 등을 비교적 잘 반영한 것도 있었다.

김씨는 “단순히 글자를 나열하는 형태의 선거공보를 음성으로 접하면 헷갈리는 부분들이 생긴다”며 “정당이나 후보 측은 공보에 표나 그림이 있다면 이 역시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장애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점자형 공보’를…

점자형 공보는 내년 6월 치러지는 제9회 지방선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다.

공직선거법이 점자형 선거공보 제작 의무를 대통령 후보,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로 제한하고 있어서다. 지방선거에 나선 기초의회 후보들은 정부로부터 제작 비용을 지원받지 못해 점자형 공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시각장애인 유권자들은 어떤 선거에서든 자신들이 독립적으로 정보를 얻고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길 바란다.

이규일 인천시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장은 “우리 동네를 위해 일할 기초의회 의원을 뽑을 때도 점자형 공보가 필요하다”며 “후보의 공약과 비전이 축약돼 있는 책자형 공보, 더 나아가 후보의 공약이 상세히 설명돼 있는 정책공약집도 모든 선거에서 점자로 제공된다면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