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얘기한다. 지금 사람을 움직이는건 '희망'보다는 '두려움'이라고.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보다 더 나쁜 내일이 되지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지낸다고. '동감'(27일 개봉)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일상은 각박해졌을지 모르지만 70년대 지금이나 '사랑'과 삶을 지탱시키는 '희망'은 변함없으니 버리지 말고 꼭 품어야한다고 소근거린다.

신라대학 영문과 소은(김하늘)은 학생운동하는 선배 동희(박용하)만 보고 있으면 숨이 턱 막힌다. 동희의 동아리룸 앞에서 서성대던 소은은 뜻하지 않게 고물 무전기 하나를 손에 넣게 된다. 같은 대학의 광고창작학과 지인(유지태)은 아마추어 무선통신에 빠져 여자친구 현지(하지원)에게 신경쓸틈이 없다.

'개기월식'이 있던 날 둘은 교신을 하게되고 다음달 학교 시계탑 앞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둘은 똑 같은 장소에서 2시간넘게 기다리지만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관객이 네 남녀의 엇길린 사랑얘긴가 하고 지레 짐작할 즈음 영화는 '마술'을 부린다. 소은은 77학번, 지인은 98학번. 즉 다른 공간과 시간속의 두 남녀가 교신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교신이라는 설정은 자칫 영화를 유치한 수준으로 전락시킬수도 있다. 하지만 '동감'은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와 섬세한 연출로 '마술'을 '현실'로 둔갑시켰다. 아니 '삶의 가변성'을 믿는 이들의 내면속에 웅크린 '그래, 이런 일이 일어날수도 있어'라는 희망과 교신하고 교감하는 빼어난 솜씨를 발휘했다.

희곡및 시나리오 작가, 연극및 영화 연출가로 팔방미인의 재주를 자랑하는 장진의 시나리오는 20년을 대비시킨 유머와 아련한 사랑의 향기를 듬뿍 담아냈다. 이런 시나리오를 분위기와 상황묘사로 요리해낸 신예 김정권감독의 섬세한 연출도 돋보인다. 기다림과 설레임 그 자체인 소은의 짝사랑과 남자보다 더 적극적인 현지의 모습, 자라 한 마리를 키우는 소은과 대형 수족관을 방안에 설치한 지인등 70년대와 90년대의 대비는 정겹고 깔끔하다.

소은이 짝사랑했던 동희가 지인의 아버지이고, 동희가 결혼한 소은의 친구 선미(김민주)가 지인의 어머니라는 하이라이트까지 영화는 냇물 흐르듯 부드럽게 관객을 감싼다. 담백하면서도 아련한 뒷말을 남기는 '동감'은 '편지'나 '약속'보다 한 수 위의 상업 멜로로 그리 부족함이 없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미소를 잘 다듬은 유지태는 제2의 한석규를 예감케하고 김하늘의 연기도 산뜻하다.
/金淳基기자·island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