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만큼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서민대중의 미움을 크게 사
는 스포츠도 드물성 싶다. 하긴 골프는 처음 도입될 때부터 장삼이사(張三
李四)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던 그런 스포츠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한
국에 들어온 외국인들 아니면 몇몇 선택받은 귀족층이나 뻐겨가며 즐길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한국에서 골프의 시초는 1900년경 원산항의 우리정부 세관 관리로 고용
된 영국인들이 세관 안 유목산 중턱에 6홀의 골프장을 만들어 경기한 것이
처음 이라고 한다. 또한 1913년 원산 근처 갈마반도의 외인촌과 황해도의
구미포에도 외국인들의 코스가 있었다지만, 목책으로 엄중히 막아 한국인
출입을 절대 금지시켰다고 전해진다. 그러던게 한국인들도 일부 상류층에
서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고, 특히 영친왕(英親王)부처는 1924년 무렵부터
일본에서 배워 이따금 서울에 와서 골프를 즐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
고 그때쯤엔 경성골프구락부라는 골프클럽이 탄생하기도 했다지만, 여전히
골프는 일부 선택된 자들의 스포츠 일 뿐이었다.
 요즘은 웬만큼 산다는 이들 치고 필드에 한 두번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만큼 크게 퍼지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날 그날 살아가기 바쁜 서
민대중과 농민들 눈에는 정치인들이나 부자가 즐기는 귀족스포츠 일 뿐이
다. 회원권 하나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고, 골프채 마련에도 수백
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스포츠를 아무나 즐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즐
기는 이들도 크게 늘었지만, 그만큼 위화감을 조성하는 스포츠 이기도 하
다. 때로는 주변 상황이나 사정 따윈 아랑곳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즐기다
가 눈총을 받는 것 또한 골프다.
 군 수뇌부들이 골프를 즐겼다가 두고 두고 구설수에 오르는 신세가 됐
다. 그도 그럴 것이 하필이면 북한 상선이 우리 영해를 침범, 하루 종일 긴
박하고 심상찮은 상황이 펼쳐질 때 유유히 골프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철
통같은 국방태세에 자신만만해서 였는지, 아니면 너무 둔감해서 였는지 좀
체 판단이 서질 않는다. 군함이 아닌 상선 침범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
었다고 해야할까. <박건영(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