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남과 북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모습에 온겨레가 울었다. 생사조
차 모른 채 반세기 넘게 찢겨져 살아야 했던 한서린 세월, 그 길고 긴 세월
의 벽은 눈물로 녹아 내렸고, 단장의 한은 통곡으로 터져 나왔다.’ 1년
전 오늘(8월 15일 광복절),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 가졌던 이산가
족상봉 때의 모습이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은 그래도 그것으로
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아니 큰 행운이었다. 그 많은 이산가족 중 제
일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에. 더구나 언젠가는 또 그런 날들
이 오리란 기대가 있었기에 다시 헤어질 용기가 생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
다.
 올 2월까지 그같은 만남이 두번 더 이어졌다. 그리고 끝이었다. 계속해
서 그런 날들이 또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미상봉 이산가족들의 간절한 소
망을 외면한 채, 느닷없이 남북적십자회담이 무한정 연기되고 말았다. 지
난 봄 일이다. 무엇에 삐쳤는지 북한측이 4월로 예정됐던 회담을 무산시켜
버린 것이다. 한때는 “면회소를 설치하자” “생사 및 주소 확인을 확대하
자”는 등 꽤나 법석들을 떨어댔었는데.
 오늘 또 광복절을 맞았지만 미상봉 이산가족들 마음은 누구보다 착잡하
다. 지난 번 몇차례의 감격적인 상봉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데, 이제 그들
을 위한 남북회담은 재개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음 상봉 때는 꼭
명단에 포함될 것 같았는데”하면서 괜한 아쉬움도 삭여보지만, 그럴수록
더 서럽고 한스럽다.
 대다수 이산가족들에겐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한적(韓赤)도 그래
서 더 애가 마른다. 기회 닿는대로 회담재개, 면회소 설치, 생사·주소확
인 확대 등을 북측에 누누이 호소해 보지만 아직은 대답없는 메아리일 뿐이
다. 무엇이 북한을 그토록 삐치게 만들었을까. 정녕 짐작대로 소원해진 대
미관계 때문이라면, 도대체 왜 그것이 남북관계, 특히 이산가족 만남에마
저 영향을 미쳐야 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답이라도 속시원히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박건영(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