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적 64만7천여㎢에 인구 2천500만이 조금 넘는 아프가니스탄. 지난 1979
년 구(舊)소련은 흔들리는 공산체제를 뒷받침 할 목적으로 이 나라를 전면
침공했었다. 당시 지구의 반을 지배하던 강대국 소련으로선 조그만 산악지
형의 나라 아프간 정복은 손바닥 뒤집기 만큼이나 쉬워 보였는지도 모른
다. 하지만 전쟁은 전혀 뜻밖의 상황으로 전개됐다. 험준한 산악과 혹독한
날씨, 아프간 전사들의 집요한 게릴라전에 소련군은 맥을 추스르지 못했
다. 끝내 소련은 개전 10년만에 5만이 넘는 병력만 잃은 채 속절없이 철군
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간은 지난 19세기 이래 외부 제국주의 열강들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
아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나라를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다. 일례로 지
난 1842년 영국은 4천500명의 군사와 1만2천여명의 지원인력으로 전면 공격
에 나섰으나, 생존자 1명만을 남긴 최악의 패배를 기록해야만 했었다. 제
정 러시아도 1865년과 1885년에 침략했으나 실패했고, 그에 앞서 1834년엔
인도로 부터 시크족이 쳐들어와 한때 페샤와르를 점령했었지만 곧 패퇴하
고 그들의 장군마저 살해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아프간의 별칭이 바로 ‘침략군의 무덤’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지키기에 아프간 국민의 희생과 고통은 너무도 컸다. “4명중 1명
의 젊은 여성은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과부다. 8명중 1명은 전쟁이나 지뢰
로 인해 장애를 갖고 있다. 10명중 10명의 가족들이 전쟁으로 가족들과 헤
어지거나 가족을 잃었다.” 이것이 아프간 국민의 암울한 현실이다.
 이같은 아프간에 또 다시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5천명이 넘는 무고
한 생명을 앗아간 최악의 미국 테러참사 때문이다. 미국은 테러 배후인물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에 숨어있다면서, ‘세계의 악마’와 그 악마를 보
호하는 세력을 섬멸하겠다고 벼른다. 이에 아프간 통치세력인 탈레반 역시
공격할테면 하라는 태도다. 누구라 할 것 없이 한판 붙고 보자는 식인데,
정작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할 애꿎은 국민들의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려오
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박건영(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