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가장 높은 레스토랑이 바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빌딩(北棟)
107층의 그 식당이었고 식당 이름 '세계의 창(windows on the world)'도 그
럴 듯하다 싶었다. 1백30여 잡다한 미국 인종을 가리켜 흔히 '인종의 도가
니(melting pot of races)' 또는 '인종의 샐러드 사발(salad bowl of
races)'이라 일컫듯이 다양한 미국인의 얼굴이 모두 그 레스토랑 창문에 비
쳤기 때문이고 전세계 경제인 금융가의 표정이 모두 그 유리창에 어렸기 때
문이다. 이번 테러로 실종된 48개 인종의 미국인도 모두 그 레스토랑을 이
용했다. 그 식당의 가장 대표적인 서로의 질문이 〃왓 추어 앤세스트리(당
신은 어느 민족계입니까)〃였던 것도 당연한 얘기다.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에는 '민족적인 주인'이 따로 없다. 언젠가는 88
년 대통령 후보였던 그리스계 듀카키스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
고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양상추가 됐든 양배추가 됐든 그 '인종의 샐러드 사발'에서 가장 대표적인
맛을 내는 기조(基調) 야채 재료가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
이르는 핵심 미국인일 뿐이다. 미국뿐 아니라 옛 소련도 1백여 '인종의 도
가니'였고 중국 역시 한족(漢族)을 비롯한 56개 '인종의 샐러드 사발'이
다. 인도는 언어만도 1,652종에다가 지폐의 액면가만도 16종의 문자로 표시
된다. 순수 유대인의 수효도 줄어든다. 물론 혼합 인종에 의한 혼혈아 증
가 때문이다.
 96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특집 기사가 기억에 생생하다. 미국뿐 아니라
지구인 전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혼혈아로 인해 향후 1백년쯤엔 희
석(稀釋)에 희석을 거듭한 '다중(多重) 혼혈'의 신인류(新人類)가 형성된다
는 것이고 '인종'이라는 말 자체와 그 개념조차 소멸된다는 것이다. 정녕
그때나 가서야 흰머리 오리를 살리려면 붉은 머리 오리를 죽이자는 식의 인
종 분규나 인도인이 아랍인으로 오인받아 죽어야 하는 등의 비극이 소멸할
것인가.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