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는 82년 10월 총리 취
임이후 총리라는 호칭보다는 '독터'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했다고 한다. 독
일 사회는 그만큼 학력중시사회다. 그러던 독일이 학력보다는 일의 성과를
중요시하는 미국식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
반 세계적인 기업인 훽스트사가 '미국을 지향한다'고 선언하면서 부터다.
 '일한 사람만 먹자'는 식의 미국식 경영 모델이 지구촌에 본격적으로 확
산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일본 최대의 PC생산업체인 NEC는 97
년 국내시장 70%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8시리즈 PC생산 중단을 선
언,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미국의 IBM이나 매킨토시와 호
환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경제 특히 기업경영
에서는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곧 글로벌 스탠더드다. 기업경영의 글로벌화라
는 것은 그래서 '미국 따라하기'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미
국식 경영제도는 일부기업이 90년대 중반 부분적으로 도입하기는 했지만 본
격적인 것은 97년 IMF 환란 이후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제일은행의 호리에 행장이 임기(3년)를 반이나 남겨
둔 상태에서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고 한다. 그의 말로는 “은행경영이 안정
을 찾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경영을 맡는게 좋다고 생각해 사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금융계는 그의 퇴진이 지난 9월 본사 감사팀
에 의한 대대적인 감사이후 나온 결정이어서 하이닉스 반도체등 대기업 여
신에 대한 잘못판단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경영잘못이 있을 경우 임기
에 관계없이 문책 하는 것이 미국식 경영제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호리에 행장은 국내의 외국인 행장 1호이기도 하지만 경영에 책임
을 지고 중도하차한 행장 1호이기도 하다. 큰 실수 없는 한 임기를 보장받
는 국내 경영풍토와 비교하면 살벌하기 짝이 없다. 호리에 행장의 퇴진은
국내 금융기관뿐 아니라 일반기업에도 큰 선례가 되는 것은 물론 이러한 아
메리칸 스탠더드 적용이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成 定 洪(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