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독재정치에 시달려야 했던 나라들에선 으레 정치보복이란 게 뒤따르곤 한다. 전 정권 집권세력의 갖가지 범법행위를 단죄함으로써 다시는 그같은 불합리가 발을 못붙이게 하자는 의미가 우선 크게 작용한다.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대전제가 깔리게 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치보복이 극심해지다 보면 더러는 사적인 감정도 섞이게 마련이어서, ‘새 역사 창조’에 앞서 혼란의 악순환부터 겪어야 하는 경우도 흔히 보게 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1994~1998년 재임). 그는 예상을 뒤엎고 정치보복 대신 화해와 포용으로 지난했던 과거를 청산한 거인 정치인이다. 인종간 갈등과 분열 대립, 각종 범죄와 부패 등 무려 342년간 계속된 소수 백인통치가 남긴 크나 큰 상처를 화해와 용서, 민주화를 통해 치유했다. 그는 집권과 함께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통한 과거청산 작업을 펼쳐나갔다. 지난날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차별을 위한 분리 격리)시절에 저지른 각종 범죄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으면 사면을 통해 용서했던 것이다. 특히 흑백간 화합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기소했던 검사,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입안자의 유족 등 누구와도 만나 손을 잡았다.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남아공에 흑백이 공존하는 평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것은 바로 만델라의 이같은 큰 정치 덕이었음은 새삼 강조할 나위도 없다.
새해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 정치권에 느닷없이 정치보복금지법이 화두를 장식하고 있다. 국민대화합 차원에서 정치보복 악순환을 종식시키기 위해 이같은 법을 제정하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얼핏 만델라의 포용과 큰 정치를 연상케 하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얼떨떨하기도 하다. 아직도 못다 청산한 과거의 악폐가 남아있었나 싶어서이다. 수십년 계속되던 군사독재를 극복한지도 꽤 오래돼, 이미 문민정부 5년을 보냈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지도 5년째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보복금지법이 필요하다면 그만큼 청산해야할 악폐가 쌓여 있다는 뜻일진대, 도대체 그동안은 무얼 이루었다는 것인지….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정치보복 금지법
입력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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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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