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헌법이라는 용어가 대다수 국민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명색이 변호사 출신인 현직 대통령도 '처음 들어보는 이론'이라고 했다던가. 대통령직 수행에 너무 바빠 법공부를 게을리한 탓인가. 그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지난해 12월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을 통과시킨 16대 국회 여야의원들도 관습헌법이라는 게 있다는 걸 몰랐던 게 분명하다. 숱한 율사 출신 의원 가운데 누구 하나 관습헌법에 어긋나는 법이라는 걸 지적한 의원이 없었으니 말이다. 혹시 알면서도 정치적 이유 때문에 모르는 체 했나? 그러니 평소에 법을 좀 안다는 사람들도 관습헌법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다고 고백하는 게 새삼스럽지 않다.
 
스위스 헌법에는 '미리 마취하지 않는 한 식육동물을 도살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가 '헌법학개론'에 소개해서 널리 알려진 얘기다. 김 교수는 실질적 의미의 헌법과 형식적 의미의 헌법을 설명하면서 이 예를 들고 있다. 이런 조항을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실질적 헌법은 '헌법전은 물론 관습과 조리까지도 모두 헌법개념에 포섭된다'. 그런데, 스위스 국민들은 어쩌다가 국가의 기본법, 법의 법인 헌법에 이런 사소한(?) 조문까지 넣었을까? 관습으로 규율하다 하다 안 되니 아예 헌법에 못을 박은 걸까? '법률은 관습에 복종한다'. 로마시대 희극작가 플라우투스의 말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이후 관습헌법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과 해석이 구구 분분하다. 법 전문가가 아닌 한 읽어봐도 알듯 모를듯한 이론들이다. 현행헌법 상 헌재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관습헌법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일반국민 누구나 평소 최고규범으로 쉽게 확인하고 동의할 수 있을만큼 명료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기회에 헌법학자들이 나서서 대한민국에 도대체 어떤 관습헌법들이 있는지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楊勳道(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