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그랑라를 넘어 로탕패스를 지나
지프가 레의 포트로드를 출발한 시간은 01:35분이었다. 차나 행인이 없어서인지 암흑의 도시 레를 벗어나는 것은 잠깐이었다. 레 공항입구에서 스리나가르와 마날리 가는 길이 갈라지는데 마날리는 시내에서 좌회전 방향이다. 지름길을 위한 것인지 처음부터 기사는 정돈되지 않은 비포장 도로를 달려 앞자리에 앉았어도 차는 몹시 흔들렸다. 이마에 스카프를 멋지게 두른 키 작은 지프기사 까르마는 매우 강인한 인상의 라다키였는데 나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한국여행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그것도 우연히 9명이나 되는 한국여행자만으로 20시간을 좁은 차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것도 변화라 한다면 이건 아주 큰 변화에 속한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여행 중 잠시 스쳐 가는 인연이라면 몰라도 나는 되도록 한국여행자들이 없는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여러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원했다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같은 코스를 움직이는 관광을 택했을 것이다. 그건 나만의 휴식이나 사색의 시간을 원했지 단체관광을 원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프 안에서의 20시간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차안에는 여자대학생 2명을 비롯해 나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모두 건강한 청년들이다. 나는 가장 연장자로서 되도록 그들의 화제에 끼어 들지 않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자 했었다. 이 먼 곳까지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여행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관심사는 무엇이고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가볍고 쾌활했다. 아니 단순하고 유쾌했다. 어제는 무엇을 먹었고 오늘은 무엇이 먹고 싶으며 내일은 모두 함께 어디에서 무얼 했으면 좋겠다는 그게 전부 일뿐 특별한 사고는 담고 있지 않았다. 그건 여행 방법도 마찬가지였다.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혼자 힘으로 탐험하고 도전하는 서양 젊은이의 여행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비슷한 연령의 청년들이지만 무엇이 그들을 서로 다른 사고와 행동으로 이끌었을까? 알치에서 만난 미국 청년의 말이 떠올랐다. 알치를 소개하던 중 그는 어떤 의미로 이 말을 썼을까? 'same, same but different'.
차가 출발하면서 누군가 기사에게 부탁을 했다. 이번 코스에서 가장 높다는 타그랑라를 통과하게 되면 꼭 말해달라고. 그러마고 답한 까르마는 초를 다투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초저녁 잠을 놓친 나는 잠시 졸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기야 사방이 암흑천지라서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으니 날이 밝기 전에 조금이라도 잠을 자두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았다. 얼마를 달렸는지 가끔 눈을 떠보면 희미한 여명 아래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바위산들이 꿈인 듯 생시인 듯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비몽사몽간에도 나는 감탄을 놓치지 않았던 것 같다. 얼마 후 까르마는 차를 세우고 모두 일어나라고 소리를 쳤다. 그곳이 바로 '타그랑라'라고. 눈을 부비며 창 밖을 보니 아직은 빛보다는 어둠이 짙다.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곳이라 모두 밖으로 나갔다. 높은 고개답게 바람이 불고 기온은 얼마나 차가운지. 담요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갔지만 눈을 인 봉우리만 희미하게 보일 뿐 사위를 분간할 수가 없다. 있다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갯마루에 초르텐을 감싸고 있는 룽다만 세찬 바람에 흔들릴 뿐. 룽다를 보니 얼마나 많은 라다키들이 저 초르텐에 기도를 바치며 그들의 소원을 빌었을까 짐작이 간다. 새벽이 가까워서인지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는 족히 되는 듯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어떻게든 이 시간(스리나가르에서 레까지. 레에서 다시 마날리까지)만큼은 말을 버리고 고요히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설명 없이 바라보고만 싶었다. 정말이지 침묵 외엔 아무 것도 마음 안에 들여놓지 않을 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시간 버스투어에 괴로움을 호소했지만 사실 눈을 돌려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이 보다 스케일이 크고 거대한 화면의 감동적인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레로 가는 길이나 레를 벗어나는 길은 어느 한 순간도 지루함이 없는 생생한 화면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는데 그 구체적인 감동의 파노라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빈곤할 수밖에 없는 내가 누리는 언어의 한계에 굴복할 뿐이었다. 산들은 충분히 나를 압도했다. 달려가서 어루만지고 안기는 산이 아니라 다만 여행자로서 지나가며 눈으로 더듬는 산일지라도 그 명암은 깊고 화려했으며 충분히 눈이 부셨다. 레를 향하는 동안은 푸르름은 푸르름대로 현란했고, 황량함은 황량함대로 깊고 그윽했으며, 구릉지대는 낮아서 아름다웠고 봉우리는 높아서 위용이 더했다.
고단한 여행 중에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