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장남 이재용씨에게 에버랜드 전환사채(CB·convertible bond)를 헐값에 넘겼다는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대표이사들의 항소심에서도 유죄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나 이학수 당시 실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을 공모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3, 5면>관련기사>
2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조희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을 공모해 회사에 970억원대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허택학, 박노빈 전·현직 사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원을 선고했다.
이는 재판부가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가격이 최소 1만4천825원임에도 불구하고 두 전·현직 사장이 이 회장 장남 이재용씨 등에게 주당 7천700원에 관련 주식을 인수토록 해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전환사채 발행 목적이 시설자금 조달 때문이라는 삼성이사회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전후 사정을 고려할 때 관련 목적은 이씨가 에버랜드 지배권을 취득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회장 등이 계열사 주주들과 공모해 배임행위를 범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기존 주주와의 공모 여부는 범죄 성립과 상관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법원의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삼성 측 변호를 맡은 김앤장 신필종 변호사는 "전환사채 발행으로 인한 손해는 주주의 손해이지 회사의 손해는 아니다"며 "의뢰인 측과 상의해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이재용씨 등에게 전환사채를 배정한 당시 이사회 결의는 정족수가 미달했었다는 이유로 무효 판결을 내렸다.
이는 이 회장의 장남인 이씨에게 회사 지배권이 넘어가는 첫 단계부터 불법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