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남편의 매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그 때 주변 그늘진 곳에서 더위를 식히던 동네 아줌마들이 이를 보고 격분, 우루루 몰려가 폭력 남편을 집단구타한다. 어느 여름 날 오후에 벌어진 일이다." 10여년 전 개봉돼 제법 많은 관객을 모았던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 첫 부분에 나온 내용이다. 분명 허구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을 것 같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다.

예나 이제나 남편에게 '매맞는 아내' 이야기가 심심찮게 화제가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폭력 남편이 적지않은 탓이리라. 반면 서구사회에선 되레 '아내에게 학대받는 남편'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그 좋은 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남편이 돈을 못번다 하여 걸핏하면 욕설을 퍼붓고, 물벼락을 안기는가 하면 구타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 밖에 고대 로마의 대 정치가 키케로나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등도 아내에게 학대받고 구박받은 남편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서구에선 '학대받는 남편' 문제가 자못 심각한 모양이다. 6~7년 전엔 미국의 가정폭력 피해자 중 3분의 1이 남편이라는 보도가 나온적도 있다. 심지어 영국에선 이미 지난 1993년에 '피학대남성 보호소'가 문을 열기도 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 남성들은 꽤 다행인듯 싶지만, 요즘은 그렇게 마음을 놓을 때도 아닌 것 같다. 마침내 우리나라도 서구처럼 매맞는 남편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3~2007년 6월 가정폭력신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아내의 남편학대가 1천300여건이나 돼 노인학대(1천34건) 아동학대(280건) 보다 더 많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쯤되니 우리 사회도 여권이 크게 신장됐다고 반가워해야 하는 것인지, 갈수록 심각해지는 야만적인 폭력 난무를 한탄해야 하는 것인지 쉽게 판단이 안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