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강광(69) 인천대 명예교수를 만나기 위해 지난 8월 15일 강화를 찾았다. 그는 강화군 화도면 문산리에 산다. 시골에서 처음 가는 집 찾기가 도회지보다 더 어려웠다. 한참을 헤매다 전화로 안내받은 골목길에 들어섰다. 여느 시골마을과 다름이 없었다. 조금 올라가자 건물 외형에서부터 한 눈에 봐도 알아 차릴 수 있는 '예술인의 집'이 나타났다. 사는 집과 작업 공간이 나뉘어 있고,

앞 마당은 작은 조각공원이었다. 기계문명에 지친 것처럼 보이는 사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와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앉아있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일흔을 목전에 둔 노 화백은 마침 작업실에 있었다.

안채에 있던 부인 박서혜 시인도 나와 반갑게 맞아줬다.

강광 교수는 2003년 인천시 남구에 있던 아파트를 팔고, 강화로 이사했다. '강화 사람'이 된지 5년이 된 것이다. 강 교수는 학기때면 1주일에 한 번은 대학강의를 한다. 강화에서 남구 도화동까지 출퇴근을 하는 셈이다. 그래도 그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강화에서 산다는 게 그저 좋을 뿐이다.

강 교수 작업실에 들어서자 그의 작품이 벽면에 가득했다. 인천에 살던 때와는 그림부터가 달라 보였다. 서기로 작품 완성연도를 표시하던 그였는데, '4340'과 같은 단기가 눈에 띄었다. 또 여러 작품마다 북두칠성이 들어갔고, 특히 꽃이나 풀같은 것을 소재로 삼은 게 많았다.

이는 2007년 5월부터 6월까지 1개월 동안 포스코미술관 초청전시회에 출품한 작품들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역사 속으로' '열매' '아름다운 터' '들에 서다' '풍경' '꽃나무' '들풀' '작은 마을' 등이 이 때의 작품 제목이다.

그 이유를 물었다.

"마리산 밑에 살면서, 단군 할아버지가 보는데 단기를 쓰지 않을 수 없잖아요. (웃음) 또 맨날 보는 게 이런거니 작품에 자연적인 소재가 많이 등장하게 되고요."

집앞 밭에서 따온 토마토로 만든 주스 등을 내온 부인은 강 교수에게 저녁때 전등사 앞에서 있을 연극 공연을 보러가자고 보챘다.

강 교수 부부처럼 도심에서 강화로 이사온 문화·예술인이 한 둘이 아니다.

인천 강화지역이 서울에 살던 문화·예술인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강화를 새로운 작업 공간이자, 삶터로 인식하면서 그들이 아예 강화에 눌러 앉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여전히 가장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집단 중 하나다. 따라서 문화·예술인들이 삶의 공간으로 주목하는 곳은 그 곳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도심에서 무뎌진 촉수를 더 예민하게 하기엔 강화도만한 곳이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아직까지 강화지역에 얼마나 많은 수의 문화·예술인이 살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06년말 인천문화재단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략은 파악할 수 있다. 인천문화재단은 이때 '인천지역 문화예술 실태 조사 및 활성화 방안 연구'의 첫 번째로 강화지역을 다뤘다. 그 결과물로 나온 보고서를 보면, 강화지역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인은 140여명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확인된 수는 이 보다 훨씬 많을 것이란 전제를 달았다. 특이한 점은 설문조사에 응한 100여명 중 절반 가까운 43.0%가 강화에 살기 전에 서울에서 살았다고 한 대목이다. 활동 분야도 다양했다. 회화(37.0%)와 문학(20.0%)이 절반을 넘었지만 조각·사진·음악·학술·기타·서예·도예·연극·만화 등으로 문화예술 전 장르에 걸쳐 있다. 또한 이들 중 상당수가 강화에 들어온지 몇년 안 된 사람들이다.

강화에 전문 문화예술인들이 많아지면서 이 지역에는 다양한 형태의 축제가 생겨나고 있다. 소규모 음악제나 연극 공연, 전시회 등이 수시로 열린다.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늘어난다. 특히 강화군을 비롯한 관에서 주도하는 축제의 질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비평가'들이 주변에 있는 탓이다.

이들 문화예술인들은 왜 강화를 택했을까. 또 어떻게 하면 더많은 문화예술인을 강화로 끌어 모을 수 있을까.

인천시는 몇년 전 4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강화종합발전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다. 외부의 시각에서, 그리고 진지한 접근없이 이뤄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시 짜야 할 때다.

강 교수는 "도로 정비와 문화유산 정비 이외에는 (강화를) 손대선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강화지역 개발은 기존 도심 재생사업이나 일반적인 농촌마을 산업단지 조성 사업과 같은 시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강화가 갖고 있는 고유 특성을 살리는 것이 무엇인지 시간을 갖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국에선 인천 전체의 문화유산 중 절반 가까이가 강화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 이 강화 문화유산을 박제된 것에서 생명력 넘쳐나는 것으로 만드는 지혜도 필요한 때다.

인천시와 강화군은 이 시점에서 강화가 갖고 있는 고려문화 유산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도 많다. 얼마전 문화재청이 추진하다 시들해진 '고려문화재 연구소'의 강화도 유치다. 경주의 신라문화재연구소, 김해의 가야문화재연구소, 호남의 백제문화재연구소와 같은 국책연구기관을 강화에 두자는 얘기다. 이를 통해 강화를 고려문화의 메카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개성~강화(인천)'를 잇는 남북 교류의 벨트도 형성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