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 풍경들

[경인일보=]포구 시장 골목, 간장 게장을 파는 여자는 같은 자리에서 30년 동안이나 노점을 했다. 꽃게 철에는 주로 간장 게장을 담가 팔면서 낙지젓과 생굴 무침도 함께 판다. 꽃게가 나지 않는 철에는 말린 생선 장사로 생업을 이어간다. "이 시장에서는 한 가지만 고집해서는 장사가 안 된다." 지금도 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데 여자는 옛날에 오히려 장사가 더 잘 됐다고 회상한다.

"그때는 많이 사다가 냉동 해놓고 먹으니까 장사가 잘 됐어요. 지금은 다들 외식을 많이 하니까 장사가 잘 안돼요. 반찬거리도 잘 안사가고. 지금이야 김장철이라 새우 사러온 사람이 많지만 이 때 뿐이에요. 횟집도 옛날 보다 안돼요.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여자는 게장은 그날 담근 것을 판다. 그래야 집에 가면 맞춤하게 익은 게장을 먹을 수 있다. 여기서 익은 것 사가면 "쩔어서 물이 안 좋다." 간장 게장 암 꽃게는 5~6마리 한통에 2만원. 시내의 게장 정식 집에서는 저런 꽃게 한 마리 올려놓고 2만원도 받고 3만원도 받는다. 충북 양념집 앞에서부터 물양장 좌판 골목이 시작된다. 과거에는 젓갈전, 생선전, 조개전, 활어전들의 구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마른 생선 좌판 옆에 조개좌판이 있고, 그 옆에 활어집도 있다. 좌판의 주인들이 바뀌면서 자꾸 더 잘 되는 품목으로 바꾸다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도 여전한 것은 중간의 젓갈 좌판과 바닷가 쪽으로 난 활어난전 정도다. 그쪽이 그래도 손님도 안정적이고 꾸준한 까닭이다.

시장 들머리에 대하를 파는 왕새우 좌판이 있다. 대하는 두 종류다. 태국산은 1kg에 1만5천원. 사우디산은 1kg에 1만8천원이다. 상인은 사우디아라비아산이 더 맛있다고 권한다. 보기에도 때깔이 좋아 보인다. 사막의 나라에서 웬 해산물인가 싶지만 시장에는 의외로 사우디 산 수산물들이 많다. 대하는 대부분이 냉동이다. 수입산 냉동새우를 해동해 판다. 왕새우 좌판 주인여자는 "소래는 전부 외국산 대하"라고 단언한다. 국산은 가격도 비싸고 물량도 많지 않기 때문이란다. 생선들은 자연산보다 양식이 더 많다. 놀래미는 무조건 자연산으로 알고들 있지만 놀래미도 양식이 있다고 여자는 귀띔한다. 자연산이 나지 않는 겨울에는 중국산 양식 놀래미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양식 물고기들은 아무리 큰 것도 2㎏을 넘지 않는다. 사료 값 때문에 더 키우면 양식업자들이 수지가 맞지 않고 너무 큰 것은 손님들이 잘 찾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3~4㎏씩 되는 광어, 우럭 대물들은 자연산이라고 보면 무방하다.

#회칼을 잡은 비범한 '여 검객'

바다 전망을 확보한 물양장 앞줄 생선 좌판들은 즉석 회를 떠서 판매한다. 관광객들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전어와, 광어, 우럭 회를 먹고 홍합 국물에 소주를 마신다. 작정하고 도시락을 싸온 나들이객들도 눈에 띈다. "비켜요 비켜." 활어 좌판대 앞을 가득 메운 인파를 뚫고 여자 하나가 대물 농어 한 마리를 보듬고 뛰어온다. 상하기 전에 어서 빨리 횟감으로 팔아 넘겨야겠다는 집념이 보인다. 여자는 소래 수산 좌판 앞에서 길을 멈춘다. 소래수산 주인여자에게 농어를 건네며 횟감으로 쓸만 한지 봐달라고 부탁한다. 족히 10㎏은 될 듯한 대어다. 주인 여자는 그다지 물이 좋아 보이지 않는 농어의 몸체를 살핀 뒤 아가미를 들춰보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가미가 하야면 날로 못 먹어. 어떤 생선이든 아가미가 빨개야 날 것으로 먹을 수 있어." 농어 주인 여자는 가져올 때의 득의양양하던 표정은 간 곳 없고 힘이 쭉 빠져서 돌아간다. 농어가 이제는 100kg도 더 나가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회를 뜨는 숙수마다 각자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지만 소래 수산 주인여자는 참으로 노련하다. 단칼에 활어의 숨통을 끊는 솜씨가 평범한 칼잡이의 그것이 아니다. 검객이 적의 숨통을 끊듯이 단칼이다. 여자가 우럭 회를 뜬다. 퍼덕거리는 우럭의 머리를 칼등으로 때려 기절시킨 뒤 단숨에 멱을 따니 우럭의 목이 댕강 잘리고 힘줄에서 피가 솟구친다. 그것을 흐르는 물에 씻으니 피가 쫙 빠져나간다. 생선회는 피를 빼는 것이 관건이다. 피를 잘 빼야 비린 맛이 없다. 여자는 비범한 검객이다. 여자는 이곳에서만 20년째 활어장사를 해왔다. 20년 칼잡이. 지나던 남자 손님이 물으니 여자는 작은 우럭 두 마리가 1만5천원이라 한다. 남자는 작은 것 한 마리 더 달라고 한다. 여자는 단칼에 거절한다. 칼 솜씨처럼 장사 또한 담백하다.

▲ 갓 잡아온 꽃게로 간장 게장을 담가 파는 소래포구 노점.

"안 사도 괜찮아요. 한 마리 더 주고 팔 거면 안 파는 게 낫지." 말없이 사라졌던 남자는 잠시 후에 다시 돌아온다. 더 싸게 파는 집이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손님들이 너무 약아 갖고. 약은 정도가 아니에요." 손님들이 값을 더 잘 알아버리니까 힘들단다. "좋은 물건 갖다 손님들한테 싸게 줄라고 하면 더 싸게 먹어 버릴라하니." 초입에서는 양식 우럭이 1㎏에 2만원이었다. 이 집은 1만5천원이니 많이 싼 편이다. 여자는 이제 약은 손님들 상대로 약은 짓을 할 수 없으니 그저 박리다매를 지향한다고 강조한다. 칼 솜씨가 좋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올해(2008년) 소래포구의 젓새우는 예년에 비해 나오는 물량이 많지 않다. 추젓은 한 드럼에 도매가로 40만원에 거래된다. 포구를 찾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김장에 쓸 정도의 소량만을 구입해 간다. 11월 어느 날, 소래 포구의 오후, 아직은 한창 밀물 때. 김장철이 다가오면서 포구는 입추의 여지가 없다. 비좁은 물양장 통로를 걷는다기보다 떠밀려 다니는 사람들. 그 어디에도 송곳 꽂을 틈 하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김장용 새우젓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가는 일은 전쟁에 가깝다. 새우젓배가 들어오는 수협 공판장 앞 부둣가도 혼잡하기는 시장통과 진배없다. 덕적도 근해에서 갓 잡혀온 젓 새우들이 부둣가로 쏟아져 내린다.

#소래포구에 새우잡이 배가 들어오면

소래포구 부녀 회원들이 배에서 막 내린 젓새우를 받아 좌판을 벌인다. 젓새우는 '말통'이라 부르는 플라스틱 통에 담아서 판다. 순식간에 포구에는 새우 파시가 선다. 아직은 새우값이 싼 편이다. 1말에 1만원에서 1만5천원 정도.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면 새우값도 덩달아 뛴다. 그때는 가격이 지금의 배 이상이다. 김장철이 다가오자 부지런한 사람들은 새우가 조금이라도 쌀 때 사다가 냉동해 두려고 소래포구를 찾았다.

가을부터 봄까지 소래포구의 또 하나의 명물은 꽃게다. 올해는 꽃게가 풍년이다. 꽃게는 작년(2007년)에 비해 30% 이상 더 많이 잡히고 있다. 암꽃게가 1㎏에 1만5천원, 수꽃게는 1만2천원. 꽃게는 활꽃게, 냉동 꽃게로도 팔리고, 간장게장과 무침으로도 팔려 나간다. 조업 나갔던 꽃게 배들이 들어오면 포구 시장안의 좌판은 물론 부둣가 바닥에도 꽃게 난전이 벌어진다. 새우 파시 한쪽에 꽃게 파시가 서는 것이다.

글·사진/강제윤 (시인·'섬을 걷다' 저자)